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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Dec 15. 2021

충분히 숙성되어야 좋은 맛을 내는 술처럼

사유원

새벽 6시 기차를 탔다. 밖은 아직 깜깜하고, 도시는 침묵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오전 9시까지 군위군에 위치한 사유원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기차역에선 언젠가 새벽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어스름하게 떠올랐다.


2019년부터 건축 쪽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소식을 들었다. 사유원이라는 이름 석자보다 더 이전에,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또 다른 건물이 한국에 지어진다는 소문에 건축하는 사람들은 웅성였다. 하지만 공사가 완료되었다는 소식 뒤에도 한참이나 사유원의 베일은 벗겨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유원은 2021년 하반기가 돼서야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이미 다녀온 건축 친구들은 많이 걸어야 하니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했고, 사유원에서도 편안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몇 번이나 문자를 보냈다. 11월 후반에 접어들자 핫팩을 챙겨가라는 조언도 들었다. 도대체 뭐하는 곳인데 모두 편안한 신발을 신으라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을 하는 걸까, 방문하기 전까진 머릿속의 물음표를 채 모두 지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이곳은 수목원이다. 갤러리이기도 하고, 파빌리온이 있는 산책로이지만 등산로 같기도 하다. 레스토랑이 있고, 죽음을 생각하는 공간을 거쳐 채플에 다다르기도 한다. 여러 건축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드넓은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역시 소나무이고, 모과나무이고, 또 느티나무이기도 했으니 수목원이 가장 적합한 정의에 가깝겠다.


사유원 한 바퀴를 돌며, 약도에 나온 건물들을 돌아보는 데에는 두 시간 반이 걸렸다. 하지만 약도에 나온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카페가 새로 지어지고 있었고, 숙박시설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사유원에 머물 수 있는 3시간이 부족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시자 할아버지의 건축을 보러 왔는데, 사유원이 가진 땅의 크기에 비하면 시자의 설계는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나뭇결을 가진 콘크리트 벽들의 연속과 중첩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역시나 돋보였으나, 나는 자꾸만 시자에게 이 프로젝트가 가졌을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가늠해 보게 됐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을 제외하고, 승효상 건축가의 이로재가 설계를 맡은 건축물이 몇 개 보였다. 이로재의 건축은 기능에 있어 자유로워 보였다. 개념적이었고, 개념을 표현하는 데에 큰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굳건했다. 죽음을 경험하는 공간이었던 명정은 좁은 통로와 높은 벽, 예상하기 어려운 동선 때문에 마치 게임 맵 어딘가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유원에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오게 될까. 여러 계절을 모두 겪어야 사유원을 모두 걸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건축과 기능들이 사유원에 덧입혀질 예정이라, 섣부른 의미부여와 판단을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다. 충분히 숙성되어야 좋은 맛이 드는 술처럼, 급한 마음은 사유원에선 조금 접어둬야 한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유원은 마음먹고 걷기 좋은 장소일 것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수많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숲일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을 만든 걸까.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을 땅을 이렇듯 마음을 써 정돈하고 길을 닦아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을 부루마블처럼 꽂아 넣는 것일까. 게다가 공사를 몇 년이나 하고도, 이게 끝이 아니라니. 그에 대한 답은 기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07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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