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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Dec 27. 2021

당신의 안부

<연말>

어떤 사람은 연말이 되면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전화를 걸기도 하고, 몇 줄에 달하는 긴 메시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올 한 해도 고마웠고 다음 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식의 인사였다. 자칫 상투적이고 형식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문장들을 다듬으며 1년에 한 번, 휴대폰 전화번호부 속 저장된 여러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일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나는 물음표가 띄워진 얼굴을 하고선 그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는 아마도 물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내가 나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결국 내가 필요해진 사람들은 나에게 찾아오게 되지 않겠냐고. 당시만 해도 퍽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지금보다 더)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었다. 인간관계가 그렇게 이해관계를 더하고 빼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게 재단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조금 더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사실 약간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는 12월 중순을 시작으로 몇 개의 송년회가 거하게 개최되었다. 내가 따로 문자 한 통 남기지 않아도, 어느 저녁 송년회에 참석해 조금 과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나의 요즘을 말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어색하고 머쓱한 인사 없이도 얼굴을 보고 맥주 잔을 부딪히면 요새 뭐하고 사냐고 다짜고짜 물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장점도 분명 있었다.




2021년에도 연말이 되니 길거리엔 조명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하고, 스타벅스에선 여느 때처럼 프리퀀시 음료를 팔기 시작했다. 서점의 매대엔 다이어리 섹션이 생기고, 상점 구석진 자리엔 어느샌가 커다란 트리가 세워졌다. 예전과 달리 다인원이 모여야 하는 모임과 행사는 취소되었고, 지하철 역사에서 구세군의 종소리를 듣는 일도 없어졌지만 어쨌든 모두 함께 마스크를 낀 채로도 연말은 연말이다.


연말 같은 것은 365일 중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의한 것이니 굳이 챙기는 것은 의미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연말 분위기와 기분이 내 등을 떠밀어 올해도 나와 함께 해 준 사람들은 누구인지 떠올린다. 나는 전화번호를 띄워 둘 필요도 없이 열 손가락을 펼쳐 든 채로 하나씩 접는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덜 소중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소홀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줄줄이 같이 떠올라 버린다. 연말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래서 미안하기도 한 마음과 함께 한다. 어떤 사람은 나의 오해로 인해 내가 밀어냈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의 일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씩 대화가 줄어 들었다. 다시 억지로 붙일 수 없을 인연들도 있지만, 내가 먼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 관계들도 분명 있기 때문에 연말을 지나는 마음 속엔 조금 껄끄러운 돌멩이들이 자리하기도 한다.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적당히 따뜻함과 다정함이 섞인 안부 인사로 1년 간의 무심함을 덮어놓기가 어려워 괜히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며 약간의 소식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엄지손가락을 놀리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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