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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n 27. 2022

바람이 통하고 식물이 자라는 집

재배의 집, 뤁스퀘어

앞으로 우린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학교의 과학 공모전 시즌이 되면 도화지를 펼쳐놓고 미래에 우리가 살게 될 집을 상상했다. 아파트 키즈로 자란 나는 지금 사는 집보다 더 높은 빌딩을 그렸고, 자동차가 날아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도시를 상상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음식이 준비되고 가구들이 움직여 공간이 변화하는 첨단 기술들을 떠올렸다. 2022년이나 되었지만, 내가 상상한 방향대로 집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건축가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하우스 비전(House Vision)은 2011년 일본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의 도시들에서 개최되는 주거에 대한 전시이다. 우리가 당면한 주거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의 집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와 기능을 제시하여 관람객에게 가까운 미래의 집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올해의 하우스 비전은 '농(農)'을 주제로 충북 진천에 위치한 뤁스퀘어에서 열렸다.



하우스 비전이 관람객에게 특별한 이유는 건축을 전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을 오로지 전시로만 소비하기엔 건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만나게 되는 건축 전시는 결국 모형과 이미지로 표현된다. 오감으로 느껴야 할 공간을 작은 모형과 평면적인 이미지로 전부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5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하우스 비전에서는 우리나라의 건축가들이 보여주는 미래의 집을 실제 크기와 기능을 모두 담아 실제의 건축으로 구현해 냈다.



            

바람이 통하고 식물이 자라는 집

  

몇 년 전부터 플랜테리어라는 단어가 들려왔고 공간에 식물을 들이는 일이 마치 유행처럼 번져갔다. 금방 지나갈 것 같았던 식물에 대한 애정은 나의 예상과 달리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반려식물을 집 안에 들이고, 식물에 관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식물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유행이라는 단어는 식물을 담기엔 좁고 얕다. 식물을 곁에 두는 일은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건축은 이를 받아들여 변화하고 있다.



하우스 비전에서 건축가들이 그려낸 미래의 집 가운데, 착착 스튜디오의 <재배의 집>이 있다. 집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인 다른 전시 작품들과는 달리 이곳은 기능을 가지고 사람들을 모은다. 관람객들은 전시를 관람하다 잠시 쉬어가고, 커피를 한잔하거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슈퍼 앞 평상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앉아 바람을 쐬는 것처럼.



재배의 집은 모든 것을 열어두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보인다. 안과 밖, 사람과 식물 사이의 경계를 모두 허물고자 했다. 이곳은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 대신 자연을 내부로 들일 수 있는 큰 창으로 사방을 둘렀다. 하우스 비전의 전시뿐 아니라 주변의 논과 밭, 그리고 진천을 두르고 있는 나지막한 산맥의 모습을 재배의 집 안으로 데려오고, 사람들은 데크에 앉아 풍경을 마치 정원에 앉은 것처럼 아주 자연스레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재배의 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층고를 높여 실내의 공간감을 없앴고 천창을 뚫어 햇빛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햇빛을 받아들이는 천창보다 더욱 크게 개구부를 열어 천장은 마치 여러 개의 거대한 꼬깔콘이 박혀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확성기의 원리처럼 이러한 천장의 형태는 빛을 더 넓고 고르게 퍼지게 할 것이다.



역동적인 형태의 천장을 마감한 목재가 그대로 바닥에도 깔린 것처럼, 바닥에 자리한 식물들 사이를 데크가 가로지른다. 뚜렷한 경계가 없이 데크는 그 자체로 길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의자가 되고 평상이 된다. 이끼가 낀 바위와 고사리들 위를 떠다니듯 사람들은 자신만의 자리를 찾고 시간을 보낸다.


        

재배의 집을 나와 전시를 보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수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수공간의 중간에는 불쑥 튀어나온 반투명한 상자들이 보이는데, 상자 안쪽이 바로 재배의 집 안쪽에서 빛을 들여오던 천창이다. 재배의 집 옥상에 건축가는 마치 거대한 수조처럼 물을 채워놓았다. 옥상에 찰랑거리며 차 있는 물이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를 얼마나 식혀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기능적인 부분뿐 아니라 노을이 질 때면 잔잔한 수면 위로 다채로운 색상의 노을빛이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진천에서 열리는 하우스 비전 전시는 6월 18일로 종료된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남겨진 건축은 또 다른 기능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다릴 예정이다. 건축가는 진천에서는 예식장을 예약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중앙에 큰 무대를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예식과 공연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재배의 집이 이 이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사람들에게 열릴지, 이곳의 햇빛과 바람과 식물들은 또다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맞이할지 벌써 기다려진다. 한 번 더 진천에 방문해 데크에 앉고 싶다.





월간 샘터 2022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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