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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Oct 03. 2022

폐쇄적이고 첨예하며 모순적인

송은

다른 분야도 물론 마찬가지일 테지만, 건축 설계 업계에도 이른바 세계적인 스타라고 불릴 만한 건축가들이 존재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면 음악으로 그래미 상을 받은 것과 비슷하고, 그 건축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하면 처음으로 내한하여 진행하는 콘서트에 비교할 수도 있겠다. 헤르조그 드 뫼롱이 한국 도산대로의 어떤 건물을 설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한국의 건축가들은 기대감에 그야말로 들썩였다.


헤르조그 드 뫼롱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그들의 건축은 낯이 익을 것이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새 둥지를 닮은 모양으로 화제가 되었었던 베이징의 올림픽 주경기장, 파도를 본뜬 듯한 함부르크의 엘프 필하모니 콘서트홀이 그들의 대표작이다. 스위스 출신의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HdM(헤르조그 드 뫼롱)이라는 이름의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로 7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아직 활발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들이다.


2018년, 도산대로에는 좋은 건축이 하나도 없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송은은 시작됐다. 기공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헤르조그 드 뫼롱은 도산대로에 영감을 받을 만한 건축물이 없었으며, 100년을 내다보고 지은 건물 같지 않다며 신랄한 평가를 남겼다. 그들이 한국에서 작업하는 첫 프로젝트였던 송은이 어떤 미술관이 될 것인지보다, 도산대로 한가운데에 위치한다는 지역적인 특성보다, 심지어는 건물의 독특한 외관보다도 건축가의 말 한마디가 더 이슈가 되었으니 과연 스타라고 불릴만했다.




폐쇄적이고 첨예하며 모순적인



2021년 10월, 송은이 개관했다. 몇 년 간 건물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공사 가림막이 사라지고 드러난 건물의 형태는 주변 어떤 건물과도 달랐다. 단단하고 간결했으며 동시에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마치 단칼에 잘리듯 깎인 건물의 뒷면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 송곳과도 같았는데, 일절 타협 없는 대각선이 하늘과 함께 보이면서 송은의 조형미가 드러났다. 단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기하학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때론 꾸미지 않고 단순한 것이 더 이루기 힘들 때가 있는데 건축이 보통 그렇다.



송은은 30M가 넘는 대로를 굳건하게 막아선 채 내부의 모습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건물의 상부 중앙에 있는 저금통의 동전 구멍 같기도 한 창문이 하늘빛을 반사하고, 빛이 더해지자 건물 외피의 나뭇결 패턴이 드러났을 뿐이다. 송은이라는 이름처럼 숨겨진 소나무를 담고 싶어 콘크리트를 굳힐 때 질감을 입힐 수 있는 목재 거푸집을 사용했고, 그에 따라 피부에 새겨진 문신처럼 건물에 새겨진 나뭇결은 빛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사한다.



송은은 도로를 향한 창을 거의 내지 않고 폐쇄적인 태도를 일관함으로 평일과 주말, 밤낮으로 자동차들이 붐비는 도산대로의 소음과 풍경을 막아 관람자들이 조용히 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관람자들 이외에 송은 상부층에서 근무하는 재단 직원들을 위해 건물의 개방성은 도로의 반대편 쪽으로 풀어냈다. 일면 까다롭고 도도해 보이는 앞모습과 달리 건물의 뒷모습을 보러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매 층마다 길쭉한 테라스가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일 의도가 아닌, 내부에서 건물을 오랜 시간 이용할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선의 빈 공간이 가지는 역할



송은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날카로운 외관과는 달리 둥글게 말려 있는 콘크리트 벽과 난간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소용돌이 형태로 풀어져 버린 띠와 같은 형상의 콘크리트 벽은 그대로 지하 3층까지 내려간다. 지상 1층에서 지하 3층까지를 연결하는 나선의 빈 공간은 지하 깊이 위치한 전시장까지 지상의 빛과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며 건물에 또 다른 개방감을 부여한다.



지상 1층에서 바로 깊은 우물과 같은 구멍을 통해 지하 3층의 전시 공간이 보이지만, 송은의 관람 순서를 따르면 지하 공간은 가장 마지막에 방문하게 된다. 로비를 지나 곡면의 콘크리트 난간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지상 2층의 전시 공간부터 시작이다. 건물의 뒤편으로 열린 창을 통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전시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 지상 2층에서 지상 3층으로, 그리고 또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1층에서 내려다보았던 둥근 공동(空洞)은 수미상관처럼 전시공간 처음과 끝에 자리한다. 이제는 지하 3층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마치 물방울 혹은 소라 껍데기의 실루엣처럼 조각된 콘크리트 벽이 보이고 그 뒤론 지상 1층 천장 조명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창이 없는 지하 공간이지만 답답함을 느끼게 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이 나선의 빈 공간 덕분일 것이다.





송은은 이제 개관 1주년이 되었다. 이제 예약이 없이도 무료로 송은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폐쇄적인 겉모습과 달리 열려 있는 내부 공간처럼 가장 상업적인 지역에 솟아오른 비상업적 문화공간인 송은이 헤르조그 드 뫼롱의 건축을 통해 어떤 전시를 지속하여 보여줄지 눈여겨볼 만하다.




월간 샘터 2022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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