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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25. 2022

건축으로 시를 쓴다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하늘 길이 닫히기 직전까지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열흘이 넘는 기간임에도 오로지 포르투갈의 두 도시에만 묵기로 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포트 와인의 산지인 포르투에서 여행 내내 알바루 시자의 건축을 볼 예정이었다. 포르투갈 파빌리온의 거대한 처마 아래를 걷고, 산타마리아 성당에 앉아 두 눈을 감아보고, 레사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 것이었다. 흰 물감으로 그려지듯 땅 위에 올라앉은 알바루 시자의 건축을 본다면 서울에서의 바쁜 마음도 하얗게 정화될 것만 같았다.


포르투갈에는 결국 가지 못하였으나, 알바루 시자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찾는 곳이 서울 근교에도 하나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지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마치 소리 없이 햇빛 아래 누운 고양이처럼 201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 곁에 머물고 있다. 햇빛으로 작품을 품어내는 미술관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카페로, 마음을 울릴 책을 한 권 만날 수 있는 서점으로.





미술관이 된 고양이


사무실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일을 하다가도 고양이의 움직임에는 힐끔 시선을 내어 주게 된다. 몸을 웅크리고 한가롭게 낮잠을 잘 때나, 햇빛 아래에 뜨끈히 누워있을 때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켤 때, 고양이 곁의 사람들은 불가항력으로 자꾸만 고양이의 선을 쳐다본다.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움직임은 계속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미술관이 된 고양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은 바로 건물이 고양이의 선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파사드는 앞마당과 이어지며 매끈한 곡면을 만들어 낸다.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형태다. 움푹 들어간 형태의 건물 모양은 마치 말발굽 같기도 하고, 어쩌면 무언가를 담는 주머니 같이도 생겼다. 원도 아니고, 호도 아닌 곡면은 어떠한 수학적인 정의에도 속하지 않고 물속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움직인다.



마치 고양이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게 되는 것처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곡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마당을 따라 걸으며 바라본 흰색의 콘크리트 건물은 끊임없이 다른 구도와 형태를 보여주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곡면에 내려앉는 그림자의 모습은 때로 회화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15m 높이로 창문 없이 솟아오른 콘크리트 외벽은 폐쇄적이고 고집스럽게 느껴질 만도 하건만,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앞에서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미메시스의 외관은 곱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움푹 파인 곡면을 통해 알바루 시자는 햇빛을, 자연을, 계절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자기를 빚듯, 붓으로 그리듯


물레 위 도자기를 빚을 때면 조금의 요철도 있어선 안 된다. 작은 틈은 매끈한 도자기의 표면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물감을 머금은 붓이 종이 위를 지날 때엔 망설임이 있어선 안 된다. 작은 떨림도 물감의 궤적에 흔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알바루 시자의 건축은 작은 요철 하나 없는 도자기나 망설이 없는 회화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외관뿐 아니라 내부의 공간 안에서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1층부터 3층의 전시 홀까지, 계단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천장이다. 전시되고 있는 미술작품을 위해 항상 일정한 조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미메시스는 외부의 자연광을 내부로 들여온다. 이곳저곳에 창을 뻥뻥 뚫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메시스의 천장에는 관람객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가로가 13m, 길이가 30m에 달하는 거대한 천창이 자리하고 있다. 천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직사광선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3층의 천장에는 1.2m의 간격을 두고 다시 또 하나의 천장이 설치되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몇 번의 반사를 거쳐서야 전시 홀로 들어오게 되는데, 그러니 내부로 들어온 간접 자연광은 은근하고 더욱 자연스럽게 내부 공간의 곳곳으로 퍼진다.



둥근 벽면이 이루고 있는 공간 위로 벽과는 또 다른 선을 그리는 이중 천장 속에는 천창뿐 아니라 실내의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난방 장치 등의 설비도 함께 숨겨져 있다. 이중 천장의 공간을 통해 건물 유지를 위한 설비를 감춰내자 관람객은 흰색 벽과 천장이 마치 하나로 이어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벽에 걸린 미술 작품뿐 아니라 공간 자체도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알바루 시자는 화가가 되고자 했으나, 결국 도화지 위가 아닌 땅 위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수많은 스케치들을 통해서 대지 위에 구현된 알바루 시자의 건축 앞에서는 어떤 복잡한 설명도, 이론도 모두 부질없이 느껴진다. 경계를 나누기 모호한 공간과 은유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빛의 향연을 가득 담은 공간감은 쉽게 잊힐 만한 것이 아니다. 건축으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알바루 시자의 건축과 아주 비슷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미메시스에서 우리는 그의 은유와 은율을 맘껏 느낄 수 있다.




월간 샘터 2022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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