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시선을 정하기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요즘 나는 아침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
'왜 이렇게 복잡할까'
마치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의 그림자가 먼저 나를 찾아오는 듯했다.
어떤 날은 그 그림자가 너무 길어서
내가 그 안에 갇혀버린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관찰되기 전까지 입자도, 파동도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들은 조용히 겹쳐진 채 떠돌다가
관찰자의 눈길이 닿는 순간
비로소 하나의 ‘현실’이 된다.
이 사실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들면서 이 과학적 조건부 명제가 내 삶에 주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시험을 앞둔 아이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책상에 펼쳐진 문제집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아이의 시선은 공허하게 그 위를 떠돌았다.
“엄마, 나는 해도 안 될 것 같아.”
그 말은 새벽에 내리는 가랑비처럼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감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별일 아니란 듯이 슬며시 양자중첩 이야기를 꺼냈다.
“빚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기도 하단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관찰되는 순간에야 빛의 성질이 정해진단다.”
“그 전까지는 여러 가능성이 함께 존재해.
지금 네 마음도 그럴 거야.
될 수도, 안 될 수도, 그저 흐를 수도 있어.
어떤 가능성을 먼저 바라보느냐가 현실을 바꿔.”
아이는 잠시 손가락으로 문제집을 천천히 눌렀다.
마치 그 안에 숨어 있는 가능성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는 사람처럼.
한참의 숙고 끝에 아이의 얼굴에 아주 작은 변화가 스쳤다.
누군가는 알아보지 못할 작은 흔들림이었지만
나에겐 그것이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나니
말끝이 마치 나를 향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생각을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매일이 지친다'는 가능성만 관찰하느라
나의 하루를 우울함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하기 싫다'
'피곤하다'
'또 복잡하다'
이 단어들은
빛이 관찰될 때 일그러지는 파동처럼
내 하루의 형태를 결정하고,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은 관찰하기 전까지 열린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매일 같은 가능성에만 고정하고 있었다.
그것도 제일 암울한 가능성에만.
사람도, 우리의 하루도, 빛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결도
현실의 결도
조용히 바뀌는 것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건
힘든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암울한 시선'일지도 모른다고.
아이의 불안도,
내 맘같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이 주는 피로함도,
사실은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의 관찰에만 몰두해 생긴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 없이 우울해지고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면,
관찰자의 자리를 조금 옮겨볼 필요가 있다.
어둡게만 보이는 한측의 시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틈을 발견해보려는 마음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변화를 다지는 의지는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커피를 내리며
“오늘은 하나만 잘해보자”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의지가, 그 작은 중얼거림이
하루의 기류를 아주 미세하게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빛의 성질을 결정짓는 것이 관찰이라면,
사람의 하루를 결정짓는 것은
아마 비슷한 종류의 ‘조용한 선택’이지 아닐까.
밤이 깊어지면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고
가능성들이 다시 '중첩의 세계'로 되돌아가 다음 날의 나를 기다린다.
피곤함과 불안함은
변치 않는 고정된 현실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한 조각의 가능성이었다는 것을.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교훈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우리가 살아갈 하루와 세계를 만든다.
나는 오늘도 가능성의 숲 속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볼지 선택한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괜찮다.
그곳을 바라보는 순간
세계는 그 빛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니까.
변화란 늘 이렇게 조용히,
관찰자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by 제제
- 하루의 어둠 속에서도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빛을 향해, 조용히 자신의 방향을 정해가는
- 열리지 않은 가능성의 중심에서, 더 나은 세계가 나타나기를 끝까지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