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삶과 단순한 생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할 이유
“심플하게 살라.”
옛 선인들이 즐겨하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결코 “적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판단하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욕망을 비워야 깊이 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지족자부(知足者富)”라고 했다.
“족함을 아는 사람이 진정 부자다.”
그가 말한 ‘단순함’은 더 적게 소유하고, 덜 갈망하고, 마음을 넓히는 것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노자는 욕망을 비워낼수록 사물의 본질을 더 명확히 본다고 말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이고, 도의 길은 하루하루 비워 가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덜어냄’은 게으름이 아니라, 잡음과 욕심을 제거해 판단의 명료함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욕심이 많으면 판단은 흐려지고, 욕심이 줄면 세상은 더 선명해진다.
이것이 노자의 단순함이 “사유의 절약”이 아니라 “사유의 정교화”인 이유다.
시비와 득실을 떠나야 사유가 깊어진다
장자는 그의 책에서 관직과 부귀를 내려놓은 은자의 삶을 반복해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말하려는 핵심은 도피가 아니다.
장자는 ‘심플한 삶’을 통해 시비, 득실, 명리의 소음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회복하라고 말한다.
夫道不欲雜 (부도불욕잡)
도는 잡다함을 원하지 않는다.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지인무기, 신인무공, 성인무명)
지인(자아를 내려놓은 사람)은 자기라는 집착이 없고, 신인(신비로운 사람)은 공을 드러내지 않으며, 성인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단순함은 자기중심적 판단을 내려놓는 매우 높은 수준의 의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단면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장자가 추구한 단순함의 조건은 시비를 가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능력,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시야, 자신의 감정과 선입견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판단,
즉,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단순함은 곧 깊은 사유의 토대였다.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정교한 이성을 세우라
스토아 철학자들(에픽테토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은 욕망을 덜어내고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대충 사는 삶이 아니라, 극도의 자기 성찰과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삶이다.
사물은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즉, 판단의 질이 곧 삶의 질이다.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은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만,
정교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확하게 보라.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라.
그에게 ‘심플한 삶’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 질서의 회복이며, 그 이성은 끊임없는 성찰과 자문(自問) 위에서 유지된다. 즉,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생각하기 위해 단순함을 추구한 것이다.
욕망은 줄이되, 사유는 결코 줄이지 말고,
단순한 생활을 추구하지만, 단순한 판단과 경솔한 사고는 경계하라
이것이 바로 선인들이 말한 ‘단순함’의 진짜 얼굴이다.
삶은 심플하게, 그러나 사유는 깊게!
이 둘을 혼동할 때, 사람은 경솔해지고, 현실을 단면으로 보고, 오판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복잡계의 세상,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위험
우리는 복잡계의 한가운데에서 산다. 한 사람의 행동에는 수많은 배경과 사연이 겹쳐 있고, 한 번의 의사결정은 여러 팀과 여러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자주 한 단면만 보고 사람을 규정하고, 사건을 '다 이해했다'는 듯이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이때 사람들은 말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심플하게 가자고.”
하지만 그때의 ‘심플함’은
선인들이 말하던 소박함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기 위해 끌어오는 구실일 때가 많다.
AI 시대의 역설: 단순한 생각일수록 뒤처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패턴을 찾아낸다.
그럴수록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가치와 윤리를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계속 단면만 보고 판단을 이어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맥락을 읽지 못해 자기의 경솔한 결론으로 인해 파급되는 장기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한 의사결정과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런 성향은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인, '판단과 의사결정'의 경쟁력을 잃게 만든다.
즉, 단순한 생각은 “인간다움”이 아니라 인간 경쟁력을 갉아먹는 약점이 된다.
성숙함이란, ‘판단을 늦출 줄 아는 능력’
복잡한 것을 일부러 더 복잡하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배우고 함양해야 할 능력은 보이는 것만으로 단정하지 않고, 들리는 말 뒤의 맥락을 상상해 보고, 내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이게 성숙함의 시작이다.
선인들이 말한 심플한 삶은 생각을 줄이는 삶이 아니라, 쓸데없는 욕망을 줄이고 더 깊이 생각할 여백을 확보하는 삶이었다.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와 비슷하다.
삶은 심플하게 정리하되, 사람과 상황에 대한 이해만큼은 섣불리 단순화하지 않아야 한다.
경솔함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다치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by 제제
- 보이는 단면 뒤에 숨은 결을 더듬어 읽으며, 성급한 판단 대신 한 번 더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 복잡한 세상에서도 사유의 여백을 지키며, 더 넓은 시야와 더 나은 선택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