待郎君 (기다리는 마음)/ 凌雲
郞云月出來 [낭운월출래] 달 뜨면 오신다던 님
月出郞不來 [월출낭불래] 달이 떠도 아니 오시네
相應君在處 [상응군재처] 계신 곳 생각해 보니
山高月出遲 [산고월출지] 산이 높아 달도 늦게 뜨는게지
조선 시대 기녀의 삶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고단한 그림자가 짙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예법을 중시하는 가문의 규수와 중매로 혼인하여 엄격한 내외를 지키며 가정을 꾸렸다. '부부유별'이 금과옥조였던 시대였기에, 남녀 간의 자유로운 감정의 교유는 담장 너머 기방에서나 허락되었다. 기녀들은 직업적으로 수많은 남자들과 교유하며 감정을 주고 받아야 했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은 극히 경계해야 했다. 자칫 진심을 주었다가 버림받을 때의 상처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금기시되었던 환경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기녀에게 가장 아픈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의 한시는 한 남자에게 마음을 주어버린 어린 기녀가 기약한 시간이 와도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며 애타는 마음을 애써 달래는 노래이다. 달은 이미 중천에 떴는데 달 뜨면 오신다던 임은 기척이 없다. 원망이 앞설 법도 한데, 그녀는 "임이 계신 곳은 산이 높아 달이 늦게 뜨는 것"이라며 애써 변명을 대신해 주며 애타는 마음을 달래고 있다. 임의 약속을 끝내 믿으려는 그 마음이 애처롭다.
이 시를 쓴 능운(凌雲)은 조선 말 담양의 기녀였다. '높은 하늘을 무심히 떠가는 구름'이라는 기명만큼이나 그녀의 예업(藝業)은 높았다. 19세기 명창 안민영은 자신의 가집인 <금옥총부(金玉叢部), 1876>에서 그녀를 두고 "능운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호남의 풍류가 끊겼다"고 극찬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이었지만, 그녀의 문학적 재능이 응축된 유일한 이 시 한 편에는 화려한 명창의 모습 대신 사랑에 가슴 졸이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타인의 흥을 돋우며 고단한 한 평생을 보냈을 그녀가 홀로 이 시를 읊조리며 떠올렸을 '첫사랑'의 기억은 어떤 것이었을까? 중천에 뜬 달을 바라보며 열리지 않는 대문에서 인기척이라도 날까 귀기울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을 한 여인의 마음이 긴 세월을 넘어 애잔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 이 글은 매거진 <천년의 그리움을 길어 올리다> 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