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라는고

by 최자현
32fb0c7d04f3d6443c2c1555acdba2dbe46ecf77


春望詞四首(꽃잎은 하염없이)/ 薛濤


花開不同賞 [화개부동상] 꽃 피어도 함께 즐길 수 없고

花落不同悲 [화락부동비]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
欲問相思處 [욕문상사처] 내 님 가장 그리운 때(處)는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이렇게 꽃 피고 지는 시절

攬草結同心 [남초결동심] 풀잎 뜯어 사랑의 정표 엮어서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 님에게 보내려 하니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그리워 타는 마음 잦아드는데
春鳥復哀吟 [춘조부애음] 봄새들이 다시 애달피 우네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바람결에 꽃잎은 지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만날 날 아득하게 멀어만 가네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사랑하는 그대와 나 맺어지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부질없이 풀잎으로 정표만 맺고 있다네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어찌하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들
翻作兩相思 [번작양상사] 애달파라 서로서로 이리 그리운 것을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아침에 거울 보다가 흘러내린 구슬같은 눈물
春風知不知 [춘풍지부지]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지게 된다. 어떤 만남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만남도 있다. 어떤 만남은 상처가 되어 기억하자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인생을 돌아보는 나이에 이르면 젊은 날의 추억들은 모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석 같은 자산이기 되기도 한다.


이 시는 당대(唐代)에 촉(지금의 사천성)의 성도 지방의 유명한 여류 시인이자 기녀였던 설도(薛濤, 약 768년~831년)가 잠시 스쳐가듯 만났던 연인이었던 원진(元稹)을 그리워하며 쓴 애절한 시이다. 이 시의 일부는 우리 가곡 동심초의 가사가 되어 우리에게 친숙하다.


薛濤(설도)는 양가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8세에 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4세에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가세가 기울어 16세에 기녀가 되었다. 기녀였지만 문재가 뛰어나 많은 문사들과 시인들의 아낌을 받았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 헌종 원화 4년(809년), 31세의 촉망받는 관료이자 시인으로도 이름이 높던 원진(元稹)이 멀리 촉 지방으로 공무로 출장을 왔다가 당대의 명성이 자자하던 42세의 설도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내를 잃은 홀몸이었지만 출장차 왔었기에 돌아가야만 하는 원진과의 사랑은 더 이어지기 힘든 것이었기에 더 애절하고 더 격정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도로서도 여인으로서 지는 꽃 같은 나이에 마지막 사랑과도 같은 원진과의 사랑에 몰입했던 것 같다.


몇 개월 후 원진은 공무가 끝나서 낙양으로 돌아가게 된다. 낙양에서 촉 지방까지는 워낙 길이 험하여 당시에는 최대한 빨리 가도 한 달도 더 걸리는 먼 거리(1100Km)였다. 당시에 중국의 중심부인 관중에서 볼 때 촉 지방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미당 서정주의 시 <귀촉도>에서도 촉 지방을 저승처럼 먼 곳이라고 그곳에 가는 길을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라고 읊고 있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보다 떠나는 남자의 마음은 더 멀어서 낙양으로 돌아간 원진은 얼마 있지 않아서 당대 명문가의 딸과 재혼하고 말았다. 원진은 사회적 지위와 가문을 중시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이 많은 기녀 출신의 설도와의 사랑은 한 때의 불장난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설도는 원진을 그리는 많은 시를 쓰며 그를 그리워하다가 만년에는 화려한 생활을 접고 조용히 은둔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원진을 그리워하며 쓴 춘망사 4수 중에서 제2수에서 '풀잎을 뜯어서 사랑의 정표를 엮는다(攬草結同心)'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에 연인들은 굵은 색실로 전통매듭과 같은 정표인 동심결(同心結)를 만들어서 나누어 가졌다고 하는데, 이 시에서는 시들고 말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끊어지고 말 풀잎을 뜯어서 정표를 만든다고 적고 있다. 이는 떠나간 님의 마음이 이미 식어서 자신만이 두 사람의 사랑을 보듬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러지고 말 것이란 것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애달게 우는 새(春鳥復哀吟)와 함께 남겨져 홀로 잊혀져 가는 여인의 아픔을 묘사하고 있다.

image.png


'풀잎을 뜯어서 사랑의 정표를 엮는다(攬草結同心)'는 표현은 또한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 보인다. 설도는 총명하고 문재가 뛰어났는데 그녀는 손재주도 좋아서 꽃물을 들여서 여러 색깔의 종이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시를 적어보낼 때 사용하기도 하고 편지지로도 쓰고, 주문에 따라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만들었다는 종이는 "설도지(薛濤箋)" 또는 "홍지(紅箋)"로 불리며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 고급 문방용품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그 좋은 손재주로 색실을 써서 사랑하는 두 마음의 연결을 상징하는 동심결을 맺지 못하고 풀잎 뜯어, 얼마 가지 못할 동심초(同心草)를 맺고 있다고 시로 적는 마음의 아픔이 애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4수의 兩相思(서로 그리운 사랑)은 떠나버린 남자가 아직도 자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위의 네 편의 시 중, 특히 세 번째 시는 시대를 넘어 우리 민족의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가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시의 제3수를 김소월의 스승 김억(김안서)이 번역/개사하고 여기에 2절을 작시하여 붙인 것에 김성태가 곡을 붙여 우리 가곡 "동심초"를 완성하였다. 4연에 나오는 동심초(同心草)는 풀을 뜯어 엮은 정표인 동심결(同心結)로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이 스러질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우리 가곡의 제목이 되었는데 때때로 식물의 이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가곡 동심초의 후렴구에서 "풀잎만 맺으라는고"는 "풀잎으로 (님에게 전하지도 못하는 부질없이 스러질) 사랑의 정표만 속절없이 맺고 있구나"란 한탄의 의미이다.


천수백 년 전의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는 책 속에 묻혀서 잊혀지지 않고, 노래가 되어 때때로 들려와서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다.

<동심초/김억 번역>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라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라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날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이 글은 매거진 <천년의 그리움을 길어 올리다> 에서 연재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03.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