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님 그리는 달밤에 | 月夜/두보

by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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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夜(어느 때나 달빛 아래서)/ 杜甫


今夜鄜州月 [금야부주월] 오늘 밤 부주(鄜州)에 뜬 달을

閨中只獨看 [규중지독간] 아내는 방 안에서 홀로 바라보겠지

遙憐小兒女 [요련소아녀] 멀리서 애뜻하게 그려보는 어린 자식들

未解憶長安 [미해억장안] 장안의 아비가 그리워함을 알지 못하겠지

香霧雲鬟濕 [향무운환습] 향기로운 안개에 구름 같은 머릿결 젖었는가

清輝玉臂寒 [청희옥비한] 맑은 달빛에 옥 같이 귀한 그 팔 시렸는가

何時倚虛幌 [하시의허황] 어느 때에나 얇은 휘장에 기대어

雙照淚痕乾 [쌍조루흔건] 달빛 아래 두 얼굴의 눈물 마를까


이 시는 춘망과 같이 두보가 안록산군에서 사로잡혀서 장안에 억류되어 있을 때 쓴 시로 부주(鄜州)에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애뜻한 그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부주(鄜州)는 현재 중국 산시성(陕西省) 옌안시(延安市) 근처의 황토고원에 위치한 자그마한 소도시이다. 장안에서 북쪽으로 직선 거리로 약 300km 떨어져 있었지만 길이 험준하여 도보나 마차로 이동하면 장안에서 부주까지 보름 남짓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억류되어 이동의 자유가 없었던 두보에게는 그 먼 거리가 더욱 더 무한이 멀게 느껴져,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었을 것이다.

1연부터 4연까지는 달을 보며 부주(鄜州)의 달밤에 같은 달을 보고 있을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적은 것이다. 4연의 아이들은 아비가 그리워함을 알지 못할 것(未解憶長安)이란 추정이 두보의 자상함을 보여주며 애뜻함을 더 해준다. 두보는 유아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던 고모의 손에 자랐지만, 모성에 대한 결핍 때문인지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깊었던 것 같다.


두보의 시는 대체적으로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기 보다는 질박하고 솔직하며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시에서 두보는 아내를 묘사하며 낭만적인 수사들을 사용하고 있다. 5연과 6연은 남편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지내는 아내의 외로움과 고초를 묘사한 구절이지만 자못 낭만적이다. 시인은 아내를 둘러싼 험하고 고된 환경을 대표하는 시어로 특이하게도 축축한 밤안개를 선정해 사용하며 이를 '향기로운 안개(香霧)'라고 적고 있다. 또한 아내의 팔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밤공기를 '맑고 투명한 달빛(清輝)이라고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내가 남편 없이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현실은 냉혹한데 시인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축축한 밤안개,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달빛이라고 한껏 낭만적인 수사로 포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안에서 억류되어 구걸하며 살다시피하고 겨우 밤이슬이나 피하며 지내고 있는 시인은 일종의 미결수로서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열악한 상황 가운데 있었다. 그가 접하고 있는 현실은 꿈 속으로 피하여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때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도 냉혹하여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시인의 걱정은 두 배가 되고 괴로움은 더 증폭되었을 것이다. 아내는 봉선현에서 남편 없이 굶주리며 아이들을 돌보다가 어린 아이 하나를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시인이 서둘러 행재소에 합류하기 위하여 가족들을 남겨두고 온 부주(鄜州)에서의 삶은 봉선현의 형편과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픈 얼굴들을 그리워하기 위하여 시인은 그들이 접한 현실을 그대로 직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 시를 적을 때도 아내의 형편을 애써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시적으로 승화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5연에 사용된 운환(雲鬟)은 중국에서 흔히 미인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시어로 우리 말에서는 '삼단같은 머릿결' 등과 비슷한 것이다. 구름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잘 틀어 올린 머리를 의미하는 운환(雲鬟)은 아내의 미모와 정갈한 모습을 상징한다. 6연에서는 아내의 팔을 옥비(玉臂)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조금 특이하고 특별한 묘사로 보인다. 당시 옥(玉)은 가장 귀한 보석으로 부와 존귀의 상징이었으며, 옥이 들어간 용어들은 문학에서는 귀인(貴人)이나 신선(神仙)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귀인의 얼굴은 옥용(玉容), 또는 옥안(玉顔)으로, 또 그 몸을 옥체라 하며 한정적인 사람들과 한정적인 경우에 사용된 편이었다. 하지만 두보는 귀족들에게나 드물게 사용되고, 초현실적이고 이상화된 미를 강조하는 시어의 요소인 옥(玉)을 사용하여 그리 흔하지 않은 조합의 옥비(玉臂)라는 시어를 창작하여 이를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민인 자신의 아내의 팔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옥비(玉臂)는 옥체처럼 추상적이거나 옥용(玉容)처럼 관념적인 인물의 신체 묘사가 아니라, 팔(臂)이라는 매우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며, 때로는 포옹 등의 애정 어린 접촉을 연상시키는 신체 부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팔은 또한 가장 노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두보는 아내를 떠올리면서 결혼 후에 경제력이 없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 가운데 그녀가 겪어야 했던 생활고와, 그녀의 두보 자신을 위한 헌신과 애정을 떠올렸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한 헌신과 노동을 상징하는 팔(臂)에 두보는 옥(玉)이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붙여 창작한 옥비(玉臂)라는 시어를 사용하여 그녀에게 보내는 감사의 헌사(獻詞)와도 같은 문장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7연과 8연은 비원(悲願)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결구(結句)이다. 일단은 언제나 만나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가족과의 상봉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로 보인다. 하지만 7연의 얇은 휘장(虛幌)에 주목해 보면 시인의 비원은 단지 가족들과의 상봉에 그치지 않는 것임을 추측하게 한다.


虛幌은 얇은 박사(薄紗)의 휘장으로 내밀한 침상에 치는 것으로 '침실', '편안함' '안온함', '친밀함', '안정감' 등을 연상시키는 시어이다. 시인이 그리는 아내와의 친밀한 만남의 장소는 얇은 휘장(虛幌)이 쳐있는 안정된 사적인 공간이다. 이는 두보가 당장 풀려난다고 해도 가질 수 있는 공간도 아니고 내전이 끝난다고 해도 주어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인 안정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보와 아내는 결혼 후에 한 번도 이런 평안함을 누리는 가운데 안식한 적이 없이 늘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두보는 그가 꿈꾸는대로 내전이 끝나서 나라를 위해 조정에서 일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아내를 눈물없이 살게 해 줄 그 언젠가를 기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두보의 '사철 발벗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두보가 꿈꾸던 '눈물 자국 마를 날'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간절한 비원(悲願)일 것이다. 그의 시가 천 년을 넘어 읽히는 이유는 바로 그 지극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예의' 때문이 아닐까?


* 이 글은 매거진 <천년의 그리움을 길어 올리다> 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