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축배의 노래/ 라 트라비아타

by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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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로 19세기 파리 사교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유명한 코르티잔(courtesan)이었던 마리 뒤플레시스 (Marie Duplessis)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코르티잔은 단순한 매춘부가 아니라 귀족이나 부유층과 교류하며 뛰어난 교양과 예술적 재능을 갖추고 유행을 선도하던 고급 창부를 일컫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폐결핵으로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뒤마 피스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소설 '동백꽃을 꽂은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을 썼습니다.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는 늘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평소에는 흰 동백꽃을, 손님을 받기 어려운 날에는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달았다고 전해집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여성의 삶과 진정한 사랑을 깊이 있게 다룬 이 소설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뒤마는 이를 희곡으로도 각색했는데 이를 본 베르디는 희곡의 비극적 사랑에 우는 여주인공이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완벽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라 트라비아타를 제작하였습니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춘희(椿姬, 동백 아가씨)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탈리아어에서 트라비아타(Traviata)의 트라(Tra)가 사이란 뜻이고 비아(via)는 길이란 뜻이 있으며 a로 끝나는 어미는 여성을 나타내므로 라 트라비아타는 '길 사이(길 아닌 곳)에 있는 여인', 또는 '정상 궤도를 벗어난 여인', '길을 잃은 여인', '타락한 여인' 등으로 새길 수 있는 제목입니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비올레타 발레리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입니다.



2.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는 수많은 명곡들이 연주되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1막의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입니다. 경쾌하고 흥겨운 곡조 때문에 오페라 무대를 넘어 수많은 연주회에서도 끊임없이 연주되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파티를 즐기자는 단순한 권주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곱씹어 보면 다른 계급에 속한 두 남녀 주인공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의 서막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노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이중창이지만, 처음으로 마주하여 서로 끌리게 된 청춘 남녀의 복잡한 내면의 갈등과 심리적 대결이 드러나는 노래입니다.


상류층을 상대하는 화류계 여성 비올레타가 오랜 병상에서 회복되어 이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그동안 먼발치에서 그녀를 연모해 왔던 알프레도가 친구인 가스통 남작에게 이끌려서 비올레타의 살롱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그녀를 처음으로 대면하여 인사를 나눕니다. 직업상 수많은 남성을 상대해 온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자신이 겪어온 남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코르티잔의 살롱에 드나드는 부류와는 달리, 알프레도는 순수하고 순진한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였습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등장한 순간부터 그에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런 남자가 화류계 여성들에게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입니다.


직업상 수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하는 젊은 여성으로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마음고생 끝에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자신의 마음만 만신창이로 상처받으리라는 것을 비올레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마음을 흔들어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돈으로 여자를 사고 쾌락을 사는 남성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경멸하고 적대감을 키우며 방어막을 칩니다. 그럼에도 웃음을 팔고 호감을 표시하여 남자들을 계속 일정한 거리에 붙잡아 두어야 했기에, 이 직업은 만만치 않은 감정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티가 시작되자 가스통 남작의 제안으로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쾌유를 축하하며 잔을 들자며 축배를 권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Libiamo ne' lieti calici
che la bellezza infiora.
E la fuggevol ora
s'inebri a voluttà.
Libiamo ne' dolci fremiti
che suscita l'amore,
poiché quell'occhio al core
onnipotente va.

즐거운 이 잔에 축배를 들자,
아름다움이 꽃피는 순간에.
이 덧없는 시간을
쾌락으로 취해보세.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달콤한 설렘에 축배를 들자.
그대의 눈빛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표면적으로는 즐거운 권주의 노래지만, 실은 알프레도의 사랑 고백이 담긴 구애의 노래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남성이 시선을 자기에게 고정시키고 눈을 마주치며 이런 노래를 부르면, 여성은 마음이 설레며,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시선에 마음이 불편해지며 불안해집니다. 본능적인 자기 방어 심리입니다.


비올레타는 겉으로는 알프레도의 노래에 화답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예봉을 꺾고자 하는 대응의 노래를 부릅니다.


Tra voi, tra voi saprò dividere
il mio gioir.
Tutto è follia nel mondo
ciò che non è piacer.
Godiam, fugace e rapido
è il gaudio dell'amore;
è un fiore che rinasce e muore,
népiù si può trovar.

그대들과 함께, 그대들과 함께
(마시며) 즐겨보겠어요.
기쁨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덧없고 어리석은 것들....
즐겨요, 사랑의 황홀함은
덧없고 빠르게 지나가니.
피고 지는 꽃과 같아,
한 번 지고 나면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당신의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는 알프레도의 구애에, 비올레타는 '나는 당신들 모두와 즐기고 싶다'며 알프레도를 쳐냅니다. 즉, 알프레도가 말하는 사랑이란 덧없고 어리석은 것이며, 사랑의 황홀함은 금방 사그라지는 것이니 차라리 술이나 마시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나를 더 힘들게 만들 생각 말고 술이나 마시다가 가라'는 방어적 메시지입니다. 비올레타의 노래에 화답하여 모든 사람들이 비올레타가 불렀던 노래와 비슷한 내용의 노래를 함께 합창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Ah! Godiam!
La vita è un breve sogno
che passa in un balen.
Godiam, godiam,
la gioia è un canto che
si spegne nel silenzio.

아! 즐기세!
인생은 덧없는 꿈과 같아
순식간에 지나가네.
즐기세, 즐기세,
기쁨은 노래와 같아
침묵 속에 사라지고 마네.


이 곡에 숨어있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심리적 공방과 신경전은 대체로 드러나지 않게 가볍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올레타의 방어적 반응은 알프레도가 둘만이 있을 때, 대놓고 사랑을 고백한 후에 비올레타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부르는 "Sempre libera"에서 잘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연출가들은 스토리 전개상 Sempre libera에서 두 사람의 갈등을 표출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는 흥겹게 그리고 낭만적이고 화려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안면을 트고 인사하는 장면 정도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독일 출신 오페라 연출가 빌리 데커( Willy Decker)의 연출로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야손이 함께 공연한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를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비극의 시작을 암시하는 중요한 서막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데커는 이 장면을 단순히 즐거운 술자리 노래로 그리는 대신, 이후 펼쳐질 드라마의 핵심을 응축해 놓은 전초전으로 활용했습니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관계를 대결, 전초전, 갈등, 심리적 공방, 신경전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묘사하는 것은 모두 화류계의 생리를 잘 모르는 알프레도 때문입니다. 코르티잔과 같은 화류계 여성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 가질 생각을 하지 말고, 일정 거리에서 서로 즐기는 관계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화류계의 불문율입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순진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직진하는 중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에게 한눈에 반하여 아무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려버린 비올레타입니다.


그녀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알프레도의 등장으로 비올레타의 마음이 그에게 쏠리고, 그녀는 한 여자로서 한 남자 앞에 서게 되자 그녀를 둘러싼 많은 익숙하고 친밀했던 고객들로부터 심리적 단절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이 가는 알프레도는 위험인물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느끼는 소외, 단절감, 고독에 휩싸인 비올레타의 마음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실질적으로 오페라의 끝까지 계속되어,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사랑하게 되지만 철없는 그로 인해서 빠져 버린 사랑 때문에 여러 모로 마음 고생하고 끝없이 상처받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빌리 데커의 '축배의 노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궤를 같이하는 몇몇 장면의 연출이 다소 과도하거나 스토리 전개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는 평도 있지만, 롤란도 비야손의 열정적인 연기와 안나 네트렙코의 완벽한 비올레타 연기로 인해 이 공연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비롯한 여러 극장에서 재공연 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미니멀리즘과 상징주의를 표방하는 빌리 데커는 무대에서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삭제하고 스토리와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의 흐름에만 집중하도록 하였습니다. 무대에 설치된 소파 외에는 유일한 무대 장치인 시계는 비올레타에게 남겨진 수명이 계속 줄어들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비극적 오페라의 비감함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 매주 토요일 저녁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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