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꿈을 꾼 후에

by 최자현


인생의 무상함과 인연의 도리를 담은 불교의 사자성어로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지요? 만난 사람과는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별리는 인생의 아픔의 한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이별로 인한 그리움들은 오직 꿈에서만 잠시 충족되기도 합니다. 꿈 속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서 기뻐하다 보면 꿈에서 깨고 난 후에 무척 허망하지요. 때로는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꿈"이란 것을 자각하며 꾸는 꿈도 있습니다. 그런 꿈은 꾸는 동안에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명문장가였던 송곡 이서우도 20년 가까이 함께 살다 40세 무렵에 사별한 아내 청송 심씨(淸松沈氏)를 그리워하다가 꿈에 만나고 깬 후에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적어서 남겼습니다.


悼亡後記夢(꿈을 꾼 후에)/ 李瑞雨


玉貌依稀看忽無 [옥모의희간홀무] 꿈에 언뜻 본 고운 얼굴 홀연 간데 없어 애태우네
覺來燈影十分孤 [각래등영십분고] 깨어보니 등불만이 홀로 외로워
早知秋雨驚人夢 [조지추우경인몽] 가을밤 빗소리에 꿈 깰 줄 알았더면
不向窓前種碧梧 [불향창전종벽오] 창 앞에 벽오동은 심지 말 것을


벽오동은 선비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무입니다. 중국 고사(장자)에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鹓鶵非梧桐不止)'는 말이 전해왔기에 벽오동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졌어요.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은 귀인이나 길사(吉事)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집안에 벽오동을 심었다고 합니다. 특히 벽오동은 벌레가 꼬이지 않고 곧게 자라는 특성이 있어, 맑고 굳은 지조가 자신들의 기개를 닮았다고 여겨 즐겨 심고 가까이 두고 아꼈습니다. 송곡도 벽오동을 기거하는 사랑채 창 앞에 심고(向窓前種碧梧), 아끼며 가까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잃고 그리워하다가 꿈속에서 겨우 만나 기뻐하는데, 후드득 후드득 벽오동 큼지막한 이파리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망연자실하며 아끼던 벽오동을 창가에 심은 것을 후회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 마음이 안타까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서우(李瑞雨 1633∼1709)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송곡(松谷)입니다. 시문에 뛰어나고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고 해요. 하지만 가세가 극도로 빈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부인의 생활고가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서우의 빈곤은 유명하여 여러가지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였어요. 숙종이 어느 추운 겨울밤, 굶으며 추위에 떠는 백성들이 가엾어서 시종보고 가장 가난한 집을 한 집 찾아서 떡과 돈을 주고 오라고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조정에서 이 이야기를 술회하다가 이서우가 나서며 자신의 집이 그밤에 먹을 것과 돈을 받았다고 감읍했다는 이야기 등 몇 종류가 전해옵니다.

꿈에 본 아내가 젊을 때 고생하던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송곡의 애뜻함은 더 배가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며 어느 시인의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라는 싯구가 떠올랐어요.


송곡 부부는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자락, 현재의 서울추모공원 인근 묘역에 나란히 안장되어 영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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