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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31. 2017

성북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손거부

[5호] 글 편집부|소설 이태준

상허 이태준의 단편 <손거부>를 소개하며


  우리 성북동을 연고지로 삼았던 소설가를 꼽으라면 누구라도 쉽게 상허 이태준을 거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월북 작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사라져버린 작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호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이 뜻 깊다 생각되어 그의 단편 하나를 소개한다.

  이왕이면 당시 성북동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여 소설 <손거부>를 선정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발표 당시(1935년)의 성북동의 풍광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성북동이 행정 구역상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고양군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당시 성북동에서는 있는 사람과 개천가에 무허가로 집을 만들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이 발표된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성북동은 서울로 편입되고 격동기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의 후유증으로 성북동은 한동안 반목의 길을 걷기도 했다. 산동네 가난하지만 어울려 행복을 일구며 살아가는 북정 마을을 똥골이라 비하하기도 했고, 돈 많은 성북동 마님 댁이 모여 살던 동리를 도둑골이라 손가락질하기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반목과 질시의 세월이 이제는 재개발 반대와 추진이라는 또 다른 상황과 맞물려 있다. 

  <손거부>에는 성북동천 둑에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초기 성북동의 풍경과 함께, 성북초등학교 쯤으로 짐작되는 학교의 이야기 등 성북동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성북동의 옛 모습과 함께 행복한 성북동의 미래를 꿈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집부>




손거부


이 태 준


  손서방도 성북동에서는 꽤 인기 있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혼인이거나 초상이거나 집터 닦는 데거나 우물 파는 데거나, 하다 못해 뉘 집 아이가 넘어져 다쳐 가지고 떠들썩하는 데라도, 손 서방이 아니 나서는 데는 별로 없다. 일정한 직업도 없지만, 천성이 터벌터벌 하여서 남의 말참례하기를 좋아하고 아무한테나 허튼소리를 잘 걸다가 때로는 당치 않는 구설도 듣는 수가 더러 있지만, 아무튼지 떠들썩하는 자리에는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손 서방이다. 그래 자기도 어디서 문소리 한 번만 크게 들려와도 이내 그리로 달려가는 버릇이거니와 저쪽에서들도 혼상 간에 마당이 좀 왁자해져야 될 일이 벌어진 집에서는 으레 손 서방을 찾아다니며 데려간다.

  그래도 웬일인지 한 번도 술은 취해서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또 아무리 입에 거품을 물고 여러 사람과 떠들다가도 안면이 있는 듯한 사람만 지나가면 으레 휙 돌아서 깍듯이 인사하는 것도 그의 특성이다. 나더러도 그리 친하기 전부터 아침이면 으레,

“지금 사진헙쇼?”

저녁이면 으레,

“이제 나오십쇼.”

하는 것이다.

작년인데 그때가 봄인지 첫여름인지는 잊었지만 늘 지나다니기만 하던 손 서방이 하루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이 댁 선생님이 계신가, 원····”

혼잣말처럼 지껄이면서 들어서는데 책이면 아마 사륙배판이나 되리만한 널판대기 하나를 들고 왔다.

“어서 오시오.”

“네, 계시군요 마침.”

“그건 뭡니까?”

“네, 허····”

그는 눈을 슴벅거리고 잠깐 히죽히죽 웃기만 하더니,

“문패 하나 써줍시사구 왔습니다.”

하였다.

“그류. 무슨 문패데 그렇게 큰데다 쓰우?”

“어디 제 이름만 씁니까? 벨걸 다 쓸걸입쇼 인제.”

“벨거라뇨?”

“거저 제가 써달란 대루만 써주십쇼.”

나는 더 물을 것도 없이 먹과 붓을 가지고 마루로 나와 그 판대기를 받아 들었다.

“그럼 뭐라고 쓰라고 불루.”

“가만 겝쇼····”

그는 힐끗 문간 쪽을 돌아보더니 손을 휙 둘러메면서 무슨 짐승을 내어쫓듯,

“가, 요런···· 망할 것들이····”

하였다. 보니까, 다른 때도 늘 그의 꽁무니에 줄줄 따라다니던 그의 두 아들이었다. 한 녀석의 얼굴이 쑥 나왔다가 코를 훌쩍하고 움츠리면 다른 한 녀석의 것이 또 쑥 나왔다가 그렇게 하고 움츠렸다.

“아이들이 온 게로구려.”

“원 망할 새끼들이 똥 누러 갈 새 없이 쫓아댕깁니다 그려.”

“가만 두,그러문 어떠우. 어서 들어오래우.”

하니까 그는 점잖게 “그럼 들어와.”

하고 혀를 채었다. 들어오는 것을 자세히 보니, 하나는 열 살쯤 되어 보이고 하나는 대여섯 살 돼 보이는데, 눈썹이 적고 눈이 귀리눈이요 입만 메기처럼 넓적한 것이 히죽대는 것서껀 똑 저희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래 뭐라고 쓰라우?”

“첫번엔 성북동을 써야겠습죠?”

“글쎄요. 그러나 번지는 따루 써 붙이지 않우? 그리고 호주의 이름만 크게 쓰지···· 우리도 그렇게 했는데?”

“아뇰시다. 거 따루따루 성가십죠. 모두 한데 쓰시구 아주 남자가 몇이요 여자가 몇이요 장자엔 누구요 차자엔 누구라구 다 써 주십쇼. 그래야 만약에 순포막서 호구 조살 와두 여러 말이 없이 간단 말씀야요,”

“거 그럴 듯 허우···· 그래 이렇게 큼직한 걸 가져왔구려.”

“그러믄요.”

하고 그는 코를 벌룽거리며 그 귀리눈의 저희 작은 아들의 볼기짝을 투덕투덕거리었다.

나는 이런 문패를 처음 써볼 뿐만 아니라 호구 조사 오는 순사한테 방패막이로 한다는 그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또 그의 어리석함에 일종의 취미도 느끼었다. 우선 첫머리엔 ‘고양군 숭일면 성북리’라 쓰고

“거기가 몇 번지요?” 물었다.

“번지 그까짓 안 쓰면 어떻습니까?”

“왜 안 쓴단 말요? 아, 장자, 차자 이름을 다 쓴다면서 정작 번질 안 쓰면 되우?”

“우링 아직 번지 없답니다.”

“번지가 없다뇨?”

“그게 개천둑에다 진 집입죠. 이를테면 국유집죠.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래 인제 면에서 나와 번질 매겨 주기 전엔 아직 모릅니다.”

“글세, 그렇다면 몰라두···· 호준 당신요?”

“네, 호주라고 쓰시구 그 밑에단 손거부라고 쓰시는데 손나라 손자 클 거 부자 부 그렇습죠.”

“이름이 아주 배부르구려.”

“그래두 배가 고픈 때가 많아 걱정이랍니다.”

해서 우리는 같이 웃었다.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호주’를 쓰고 ‘손거부’를 썼다.

“그럼 장자를 쓰기 전에 손서방 부인부터 쓰는 게 옳지 않우?”

“그까짓 건 써 뭘 합니까?”

“그까짓 거라뇨? 부인은 식구가 아뇨?”

“헤, 쓰실 것 없죠. 그까짓···에펜네가 사람 값에 갑니까 어디”

“예, 여보, 그래두 부인이 있길래 저렇게 아들을 낳지 않았소? 부인성씨가 뭐요, 이름서껀?”

“거 뭐, 쓰실 것 없대두요, 이름이 뭔지두 여태껏 이십 년을 살아야 모릅죠.”

하고 삼부자가 다 히죽거리고 웃었다.

“그럼, 부인은 빼구 장자엔 이름이 뭐요?”

“이 녀석인데 대성이랍니다.”

“큰 대허구 이룰 성자요?”

“네.”

“또 차자엔? 재요?”

“네, 복성이랍니다.”

“복 복자 이룰 성자?”

“네.”

“거 이름이 모두 훌륭허우.”

“저 아래 구장님이 지셨답니다.”

“참 잘 지셨소.”

“헤!”

하고 손서방은 침을 뱉더니, 

“어디 이름대루 갑니까? 저두 이름대루 됐으면 부럴 게 없게요.”

하였다.

“인제 정말 거부 될 날이 있을지 아우.”

“틀렸습니다. 싹이 노랬는걸입쇼.”

“왜요? 인제 벌문 되지···· 이담엔 남자가 몇이구 여자가 몇이라

구 쓰랬죠?”

“네, 남이 우리 삼부자 알려 삼잉, 여가 일이라 하십쇼.”

“딸은 없구려.”

“하나 있다 잃었답니다.”

“거 고명딸이 될걸 잃었구려.”

“잘 죽었습죠. 딸 자식이란 제 돈돠 제 지체가 있구 말이 좀 천헙니

까? 어떤 녀석이 제 자식을 갈보나 창기루 아 팔구퍼 팔겠습니까? 돈과 지체 없다 보니 그리 되는 겁죠.”

“그렇게 보면 참 딸자식이 천하긴 허우, 딴은···· ”

“아, 그럼요, 이런 사내자식들야 팔아먹으랴 팔아먹을 수가 있냐 말씀야요? 그리게 예로부터 아들 아들 허는 거 아닙니까?”

하고 또 아들이 기특한 듯 두 녀석의 노랗다 못해 빨간 머리를 한 손으로 하나씩 쓰다듬었다.

“꽤 아이들을 귀애하는구려?”

“그럼. 내가 뭬 천량이 남과 같이 있습니까, 일가친척이 있길 헙니까.

그저 이 녀석들 기르는 재미죠.”

“자, 다 썼수. 한번 읽으리까?”

“네.”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호주 손거부, 장자 대성, 차자 복성 남 삼, 여일, 그러우. 됐수?”

“네 좋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 도합은 안 매기십니까?”

“도합이라뇨?”

“인구가 도합에 사 인이라구요.”

나는 다시 붓에 먹을 찍었다.

“인구라구? 식구라는 게 좋지 않겠소?”

“인구가 도합 사 인이라 하십쇼.”

그가 쓰라는 대로 ‘인구 도합 사 인’까지 마저 써주었다.

그 다음부터 손서방은 일이 있건 없건 우리 집에 자주 들렀다.

“이달 ×× 날이 쳉결입니다. 아십쇼?”

또, “이달 ××날 요 아래 ××학교서 우두 넣는답니다. 아십니까?”

이런 소식을 그는 동네 소임보다도 더 빠르게 일러 주었고,

“저 건너 살구나무 배기터가 매평 팔 원씩에 팔렸답니다.”

혹은 “요 너머 논꿀서 지난 밤에 도적이 튕겼세요. 소문을 들으섰세요.”

이런 것도 일부러 찾아와 일러 주곤 하였다.

한번은 오더니,

“오늘은 뭐 여쭤 드릴 게 있어 온 게 아니라 좀 선생님과 의논할 게

있어 왔습니다.” 

하였다.

“의논할 게 있어요? 여기 와 앉으슈.”

“네.” 역시 꽁무니를 따라 들어오는 두 아들 중에 큰 녀석을 가리키면서,

“아, 이 녀석이 제법이란 말입니다. 아마 애비보단 날랴는가 봅니다.”

하였다.

“나야지. 못해 쓰우.”

“아, 학교에 자꾸 다니겠답니다그려. 거 보내야 옳겠습죠?”

“옳구 여부가 있수. 늦었지요.”

“허긴 이 세상에 괄셀 안 받구 살랴문 공부가 있어야겠드군요····.

그래 요 아래 ××학교에 가 사정을 했더니 내일 학생될 아일 데리구

오라구 허드군요.”

“거, 잘됐수.”

“공부시키는 게 여불없이 좋은 일입죠?”

“아, 글쎄 으레 시켜야 할 게죠. 여북한 사람이 자식을 가리키지 못허우.”

“그럼 됐습니다···좀 어정쩡해서 선생님 말씀을 듣구 헐라구 왔습죠.”

그 이튼날 아침인데 손서방은 동저고릿바람이나 깨끗이 빨아 다린 것을 입고 학교에 가는 길이라고 우리 집에 들렀다.

“선생님? 황송합니다만 헌 모자 있으시면 잠깐 좀 빌리십시오.”

“쓰구 가시게?”

“네.”

“두루매기두 없이요?”

“없으면 대숩니까? 거저 맨머리바람으로 애비 되는 게 학교에 드나들면 자식의 기를 꺽어놓는 거란 말씀야요.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알었수. 내 모자 쓰구 갔다 오.”

그는 골이 커서 그런지 자리가 잡히지 않아 그런지 떠들썩하게 얹혀지는 내 소프트를 쓰고 기운이 나서 나갔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가는 그의 두 아들녀석들부터 쳐다보고 서로 꾹꾹 찌르며 웃었다.

그 뒤부터 대성이 녀석은 날마다 학교에 간답시고 책보를 끼고 지나갔고 손서방은 전보다는 좀 뜸하게 보이었다.

“왠일유? 요즘은 잘 만날 수 없으니?”

한번은 물으니,

“아, 공부 하나 시키는 게 전과 달습니다그려. 책 사 주, 월사금 주 허구 돈을 달랍죠. 또 다 굶어두 학교에 갈 놈야 어떻게 굶깁니까? 그래 진일 마른 일 막 쫓아댕깁니다.”

하면서 힁하니 달아났다. 한번은 손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올라왔다.

“아, 웬일유?”

“채석장서 일허다 돌에 짓쪘습니다.”

“대단허우.”

“엄지손가락 하내 아휴···· 아마 못쓰게 됐나 봅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서다. 아침에 산보삼아 뒷산으로 올라갔더니 미륵당 쪽 골짜구니에서 웬 울음 소리가 났다. 아이의 울음 소리인데 엄살하는 것을 보아 매를 맞는 소리였다. 슬금슬금 그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손서방이 저희 큰 아들애를 끌고 와서 때리는 것이었다.

“이 이눔 새끼·· 애빈 먹을 걸 못 먹구 가리키·· 가리켜 보는데 이눔 새끼, 뭐 학교엔 안 가구 진고개루만 싸댕겨···”

목에 핏대가 일어선 손서방은 회초리라기보다 몽둥이에 가까운 나무로 아들을 못 달아나게 두 손을 묶어 쥐고 등덜미를 내려 패었다. 그러는데 이내 어디선지 태중이라도 만삭에 가까운 듯한 그의 아내가 무거운 걸음을 비칠거리며 달려들었다.

“글쎄, 왜···· 아일 쥑이려 들우? 걔가 잘못했수, 어디? 학교서 오지 말랬단 걸 어떡허우 그럼····”

아들이 이내 어미에게 휩쌔자 손서방은 더 때릴 수가 없어 침을 배앝고 매를 놓았다.

“학교서 왜 오지 말래? 아, 월사금을 안 냈나 후원회빌 안 냈나···· 그눔의 새끼 핑계지····”

“핑계가 뭐야·· 마전집 아이가 와 그러는데 선생말귈 못 알아듣는다구 오지 말랬다구 그리든걸 그래···· 벨눔의 학교 다 봤어···· 못 알아들으문 알아듣두룩 가르켜 주는 게 아니라···”

나는 그날 학교 사람 하나를 만나 이 대성의 이야기를 물었더니,

“저능아옝. 당최 것두 웬만해야 가르켜먹지 않어요. 아주 쇠대가린걸····”

며칠 뒤에 손서방이 그 문패, 그의 말대로 벨걸 다 쓴 문패를 다시 떼어 들고 왔다. 역시 그의 뒤엔 대성이 복성이가 줄레줄레 따라들어왔다.

“어서 오.”

“네···· 저···· 그제 아침에 아들 또 하나 낳습니다.”

“저런! 순산하셨소?”

“네, 국밥 잘 먹습니다”

“참 반가우.”

“이름 하나 지어 주십쇼. 아주 문패에다두 써주십사구 이렇게 떼들구 왔습죠.”

“이름요?”

“네···· 대성이 복성이허구 성자가 항렬자처럼 됐으니 무슨 성이루 하나 져 주십시오.”

“구장님더러 마저 지시래지요?”

“요즘 안 계십답니다. 아, 아무 자나 좋은 자루 하나 지십쇼그려.”

“아무 자나 좋은 자?···· 손서방이 셋째아들은 뭬 되길 바라우?”

“어디 이름대루 됩니까?”

“그래두····”

그는 잠깐 먼산을 쳐다보더니,

“이눔은 글을 잘해서 국록을 좀 먹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국록? 그럼 녹자루 합시다. 복 녹자가 있으니 손녹성이라, 거 참 괜찮우.”

“녹셍이 좋겠습죠. 손녹셍이라... 부르기두 십상 좋은 뎁쇼, 그럼 삼자에 녹성이라구 또 써넣야겠습죠.”

“그럽시다. 인구 수도 하나 또 늘구.”

나는 먹과 붓을 내어 그 문패에다 ‘삼자 녹성’을 써 넣고 ‘인구 도합사 인’에는 ‘오 인’으로 고쳐 주었다. 그리고 먹장난을 하려는 대성이더러,

“이놈, 왜 학교엔 안 댕겨?”

하였더니 손서방이, “참!”하고 놀라면서,

“말씀드리구 가자던 걸 잊을 뻔했군요.  그 녀석 공부 안 시키겠습니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왜 안 시키느냐’고 묻기 전에 이내 말을 계속하였다.

“뭐, 대학교까지나 시켜야지, 그렇지 않군 무슨 회사나 상점 고씨까이밖에 못 된대니 그걸 누가 시킵니까. 막벌이 해먹는 게 마음 편헙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 학교서두 자꾸 데릴러 오구 저두 그냥 댕기겠단 걸 애저녁에 고만두라구 말렸습니다.”

“글쎄요····”

나는 대성이가 산에서 매맞던 것을 보았고 그 학교 선생에게서 들은 말도 있어서 손서방의 말이 거짓인 것을 아나 그냥 곧이듣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녹셍이 녹셍이 자꾸 불러야 입에 오르지. 헤···· 고맙습니다.”

손서방은 아들 이름 하나가 더 는 문패를 들고 두 아들의 앞을 서서

우쭐렁거리며 나갔다. 나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더니,

“참 모레가 기 다는 날이랍죠. 그 날은 기 달었나 안 달었나 조살 나온답니다. 기 꼭 다십쇼. 괜히····”하고 나갔다.


(신동아 1935. 11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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