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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r 30. 2018

성북동 착한 형을 만나다

[8호] 주민 인터뷰|김현주·오예주

성북동에 오면 성북동 메인 도로 중간쯤에 마치 천하대장군처럼 마을을 지키듯 서 있는 원관희 님을 볼 수가 있다.


- 안녕하세요. 성북동에서 착하고 성실하기로 유명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뵈었습니다. 현재 살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는 것도, 말씀드릴 것도 별로 없는데 인터뷰를 하자 하시니 쑥스럽네요.(웃음) 저는 성북동에서 45년을 살았습니다. 성북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성북동천이 복개되기 전이라서 날마다 가재잡고 물놀이하며 놀았지요. 여기서 태어나지는 않았어요.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4살 때 이곳 성북동으로 이사와 계속 살고 있어요. (집 쪽을 가리키시며) 홍익중·고등학교 올라가는 산 중턱에 살고 있죠.


- 목소리의 울림이 무척 좋으세요.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성악을 했습니다. 저희 집이 삼형제이고, 삼형제 모두 목소리가 좋은데 저만 성악을 했었죠. 지금은 그만 두었어요. 


- 미성의 목소리가 너무 좋은데 성악을 계속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니요. 군대 갈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성악을 포기했죠. 예전에 몇 번, 라이브카페에 가서 노래도 부르곤 했는데 성악발성이라 대중적인 노래와는 맞지 않아서 잘 안갑니다.


- 성북동에서 일을 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원관희 님은 성북동 '손가네 곰국수' 주차 관리원으로 일하고 계심) 

이 일을 한 지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식당 영업은 9시부터이지만 저는 11시에 출근해서 9시까지 근무를 하죠. 손님들도 많이 알지만, 성북동에 오래 살아서인지 이 동네 분들을 거의 많이 압니다. 거의 24시간을 성북동에서만 보내다보니 성북동이 편하고 좋습니다.


-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자동화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자동제어 공장자동화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지요. (인터뷰 도중에도 차가 들어오는지 보시느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긴장하심)


- 성북동에서 제일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이 동네에 공터가 엄청 많았어요. 공터에서 동네친구들과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며 뛰어놀던 생각, 냇가에서 가재 잡던 생각, 성북천에서 썰매타고 놀던 생각들이 기억납니다. 예전엔 여기 성북천에서 빨래도 많이 했어요. 그때가 그립죠. (그때를 회상하듯 먼 곳을 바라보심) 

이젠 성북동이 많이 변했죠.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새로운 음식점과 카페가 생기고요. 

(지나가시던 아주머니가 인터뷰하시는 걸 보고 던지는 말씀. ‘성북동 착한 형, 여기서 뭐하는 거야~’ 주위 사람들은 원관희 님을 성북동 착한 형이라 부른다고 하심)


- 성북동에 추천할 만한 명소가 있는지요?

네. 성북초등학교 후문을 지나 성락원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락원 우측길을 지나서 꽤 깊고 큰 연못이 몇 개 있어요. 그 곳은 모르는 사람이 많아 아주 조용하고 초록나무가 많은 산책로입니다. 한 번 가보시면 좋다고 하실 겁니다. (살짝 미소 지음)


-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저는 3형제 중 막내지만 80대 노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건강이 늘 걱정됩니다. 중간에 고비가 있어 돌아가실 뻔 했던 적이 있었죠. 어머니가 계속 건강하게 사셨으면 합니다.

성북동은 조용해서 크게 변하는 것은 싫지만 옛날 좁은 골목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지나다니기도 불편한 좁은 골목과 낙후된 곳을 보수해서 주민이 살기 좋게 깔끔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달려가신다. 점심시간이라 바쁘실 것 같아 다음을 약속하며 일어섰다. 차를 향해 뛰어가시는 건장한 몸에서 건강하고 착한 마음과 성실함이 느껴진다. 성북동에서 노모와 함께 좋은 일들만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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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성북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성북동 한 모퉁이에 터 잡고 살아가는 주민이기도 하다. 성북동이 성북동다움을 간직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성북동 사람이다.


오예주는 본지 편집위원으로, 창간호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해왔다. 성북동에 살기도 했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성북동이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로 남기를 바라는 성북동 사람이다. 지금은 성북동에 살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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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8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6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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