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Jun 11. 2018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10호] 편집후기|글 김기민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계획은 완벽했고, 그대로 추진하기만 하면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 어디 그러한가요. 내가 예상 못했던 일들이 닥치고 당신에게도 닥치며 우리 모두에게 닥칩니다. 계획은 어긋나고 순조로움 따위는 채 오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고 없는 겁니다. 우린 모두 시시각각 새로운 일들이 터지고 계획했던 것 이상의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 안에서 계획, 순조로운 추진, 그리고 평화로운 완성이 들어설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요.


  돌이켜 보면 성북동천이 해왔던 모든 사업과 활동들이 그러했습니다. 계획을 세울 땐 그 계획대로 되리란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한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는 믿음이 충만했지만 성북동천의 주요 사업이었던 마을사진전·마을여행 프로그램·마을잡지 간행·마을학교도, 성북동천 혹은 소속 회원에게 요청되었던 각종 회의참석과 자문 활동, 소소한 용역 의뢰, 다양한 단위에서 성북동천에 요청하는 협력과 연대, 그리고 소속 회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각자의 삶과 자기 생계 해결을 위한 일련의 과정 가운데서 우리가 그린 그림들이 처음 구상대로 완성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살이 가운데 순탄하고 쉬운 게 얼마나 있을까마는, 마을살이 역시 그렇습니다.


  올해 마을잡지에서는 기존의 거주자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 주민 인터뷰에서 좀 더 나아가 성북동에 사는 주민이면서 자신의 직업과 성북동이라는 지역적 특성과의 연계를 시도해 좀 더 풍성한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계획했고, 그 첫 시도로 어느 연극 연출가분을 인터뷰하기로 했지만 인터뷰이 사전조사, 질문지 작성 및 내부 검토 등의 과정을 진행하지 못해 결국 새로운 인터뷰 기획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마을미디어 단체로서 주민들이 궁금해 하거나 논의가 필요한 현안들을 지역에 공론의 장을 세우는 작업으로서 동네 주민들의 보행환경, 도시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환경권, 지역개발과정에서 의사결정 구조 및 참여 주체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 잡지에 싣고자 했으나 현장에서 장을 만들고 사람들을 조직하는데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이지 못해 초반 작업까지만 진행하고, 계획한 나머지 과정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은 왜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말 해낼 순 없었던 건지(좀 더 노력했다면 할 수 있었을지), 이후에 다시 시도할 것인지, 시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들은 앞으로 이어질 평가의 과정으로 넘겨졌지만, 편집후기를 쓰며 남는 아쉬움까지 이후의 과정으로 말끔히 넘기지 못하는 건 제 욕심 때문이겠지요.

  성북동천 회원들은 올 한 해 마을잡지 10호 이후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10’이라는 숫자가 갖는 완결성 때문일까요. 지난 5년을 매해 꼬박 간행해온 마을잡지가 앞으로 5년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부터 성북동천이 잡지 간행 외에 어떤 활동을 상상해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까지, 아직 풀지 못한 실마리가 한가득입니다. 다가오는 연말, 이어서 내년 총회 전까지 성북동천이,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한 고민과 탐색의 여정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 여정의 종착지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성북동천이 해왔던 활동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여전할 것이고, 이후의 어떤 상상도 그 위에서 이루어지겠지요. 무엇을 하든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해왔던 일들은 같이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이니까요.


사람들이 같이 하는 일은 뭐든 같이 해왔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_

김기민은 성북동천의 만년 총무이다. 2011년 조용하고 한적하며 평화로운 동네를 찾아 카페 티티카카를 열면서 성북동과 인연을 맺었고, 경영 수완이라고는 1도 없어 지난 2015년 문을 닫았으면서도 여전히 성북동에서 동네 주민이자 누군가의 이웃으로, 한편으로는 지역의 (자원)활동가로 정체화하여 살고 있다. 심지어 그 카페(였던) 공간을 이제 ‘동네공간’이라는 이름의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동네공간도 살고 있는 집도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어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네공간 | 선잠로 12-6, 1층 건축그룹[tam]

adultscentre@gmail.com | facebook.com/coopspace


_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