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주민 기고 | 글 윤혜정
글·사진 윤혜정
성북동의 높은 언덕을 올라와 작은 골목에 접어들면 우리 어린이집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햇살이 잘 내리는 어린이집. 나는 햇살이 잘 드는 이 골목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제는 여기서 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일도 하고 있다. 그래서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은 나에게 더 특별한 곳이다.
내 아이를 위해 문을 열게 된 어린이집
어린이집을 개원한 이유는 첫째 아이 때문이었다. 엄마 마음이 다 똑같듯 나도 아이를 낳으니 내 아이에게 만큼은 누구보다 까탈스러운 엄마였고, 눈에 드는 어린이집을 찾아 여러 동네를 헤맸다. 그러다가 ‘에이, 내가 차리고 말지.’하고 조금은 충동적으로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번 마음먹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 덕에 일사천리로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은 문을 열게 되었다. 어린이집의 기본이 되는 보육프로그램부터 시작해 가구 하나, 놀잇감 하나 내 손길 안 닿은 곳 없이 정성들여 준비했다. 그렇게 첫째와 첫째 또래의 성북동 친구들과 함께 어린이집은 첫 해를 맞았다.
아이들이 아이다운 곳
첫 아이를 낳고, ‘아이다움’이라는 이름의 육아품앗이 모임을 만들었었다. 단순히 엄마들이 육아정보를 공유하는 것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으면 했다. 표준보육과정을 바탕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과 놀이 활동을 했다. 품앗이모임의 이름이었던 ‘아이다움’은 ‘아름다움(심미감), 이야기, 다양성, 움직임’의 줄임말이다. 이후 ‘아이다움’은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의 보육철학이 되었다. 어린이집이 아이들이 아이답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아이들에게는 밥 잘 먹고, 잘 자는 것만큼 잘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모든 아이가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어린이집은 조용할 날이 없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친구와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아이들에게 말은 하지만, 매번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줄 안다면 그게 아이일까 싶기도 하다.(나는 아직도 때때로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도 못한 아이들이 입소하여 서로 놀잇감을 뺏고 빼앗기다가, 조금 자라면 친구가 놀이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또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같이 놀이하고 양보까지 하고 있다. 나의 첫째 아이도 느린 아이였기 때문에, 나의 육아 모토는 ‘기다림’이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다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성장시간표가 있고, 그 시간표에 맞춰 기회를 마련해주고 충분히 격려해 주면 그만이다. 성장시간표에 맞지 않는 자극은 무의미하다.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아이다운, 그래서 아이도 어른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성북동의 유일한 가정 어린이집
성북동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어린이집이 많이 없는 편이다.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고, 유동인구가 적어 보육수요가 높지 않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대부분의 가정 어린이집은 아파트 1층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 어린이집은 빌라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굉장히 아담하다. 면적에 대비해 정원이 정해지므로 우리 어린이집 정원은 흔치 않은 13명이다. 처음엔 너무 작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지금은 내가 우리 어린이집을 자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4살 이하의 어린 영아들 열 셋에 교직원 다섯 명이 모여 있다 보니 우리 반, 옆 반, 우리 선생님, 옆 반 선생님 이런 구분도 없다. 다 우리 반 아이들이고, 우리 선생님이다.
개원 준비를 할 때부터 실외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성북동에는 아파트단지가 없다 보니 이용할 수 있는 인근 놀이터도 없었다. 고민 끝에 빌라 1층의 넓은 화단을 정리해 작은 모래놀이터와 신체활동 공간을 만들었다.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아이들 13명이 놀기에는 맞춤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이 공간에서 햇볕을 쬐며 아이들과 책을 읽고, 여름에는 간이풀장을 펼쳐 물놀이를 하기도 한다. 실외놀이터에서 나오면 성북동 천혜의 환경이 펼쳐진다. 성북동에는 유흥가가 없어 소음이 적다. 걷다 보면 들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까지 아이들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어린이집 바로 옆에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친정집이 있다. 친정집은 2013년도에 서울미래유산-윤중식 가옥으로 지정되었고, 마을잡지 지난 호에 소개되었던 소나무아트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친정집 마당에는 첫째의 붕붕카와 미끄럼틀이 있어, 어린이집 아이들과 종종 산책을 다녀오곤 한다. 봄, 가을이 되면 돗자리 하나 들고 소풍을 간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지만) 김밥까지 함께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큰 소나무 아래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어린 시절도 생각나곤 한다.
어른도 아이도 행복한 어린이집
올해 여름에는 가슴 아픈 소식들이 많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아이들. 그 아이들의 마음에 난 상처를 보는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자아냈다.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내 첫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개원하며, 아픈 아이 없이 다치는 아이 없이 평화로운 어린이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좋은 교사들이 중요했고, 지금도 교사 임용에 가장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어린이집으로 꾸리기 위해 5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얼마 전 개원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이 “일을 시작할 때는 이맘때쯤까지 일하고 그만두려 계획했었는데, 요즘은 어린이집이 너무 재미있어서 못 그만두겠어요.”하고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그 후로 며칠간 그 말이 생각나 기분이 좋았다.
교사와 부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교사와 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대화를 많이 나눠야 아이들도 어린이집에서 더욱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대부분 사용하는 스마트폰 알림장도 있지만, 등·하원시간에 부모와 교사가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한다.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엄마입장에서 육아고충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넘어 좋은 친구가 된 인연도 많이 생겼다. 내가 어린이집을 하며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어린이집이 조용할 날 없이 시끌벅적한 아이들 목소리로 하루하루 채워지는걸 보면 내가 바라던 어린이집으로 꾸려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도, 교사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꾸준히 만들어가려 한다.
지금은 5개월이 되어가는 둘째아이와 함께 매일 출근을 한다. 아마 첫째아이처럼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에서 하나하나 배워가며 밝은 아이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어떤 친구들과 어떤 모습으로 하루하루 커갈 지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끝]
윤혜정은 성북동에서 태어나 지금껏 성북동에 살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에서 방송연예학과 아동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 유진어린이집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첫 아이 출산 후, 2014년도에 성북동에 <햇살내리는 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