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성북동 향수|글 최윤석
나의 외갓집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2층짜리 양옥집으로, 그곳에는 친척 어른들을 비롯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족은 물론이고 이웃들과도 왕래가 잦았던 터라 외갓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집안은 물론이고 동네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온갖 놀이에 열중하곤 했다. 인원 수가 많았던 데 비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평화롭게 어울려 놀기 위해서는 놀이거리를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무엇이든 우리가 직접 한다’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기에 학교나 학원에서 터득한 놀이들을 사촌들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연극적인 요소가 필요할 때는 소품을 직접 제작하는 일도 허다했다. 학년이 높아지고 커다랗게만 느껴졌던 이층집이 비좁게 느껴질 즈음, 우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익숙한 제기동 골목으로부터 시작해 종암동, 안암동에서 보문동까지... 걷거나 버스, 지하철을 타고 낯선 동네를 탐험하고 오는 기분은 마치 먼 바다까지 헤엄쳐 나갔다 돌아오는 듯 긴장되고 두려운 동시에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누워 각자 수첩에 빼곡히 적은 탐험일지를 읽으며 쌈짓돈으로 산 불량식품을 먹고, 결국은 녹초가 된 몸이 온돌 바닥 온기에 눌어붙듯 까무룩 잠들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미술작가다. 때때로 내가 미술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에 대해 궁금증이 일곤 한다. 특히나 동료 작가들의 2세들에게 잠재해있는 예술적 능력들이 엿보일 때면 그들과 달리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적 혜택도 없이, 상대적으로 평범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어떤 연유로 미술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향수에 젖어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순례자의 발걸음과도 같은 엄숙함으로 기억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간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시절에도 작가가 되는 것에 큰 뜻이 없었고, 입시 미술생의 시절은 더욱 아니다. 오! 하마터면 미술을 저버릴 뻔했던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여! 입시 미술은 미술 본연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앗아가기에 충분할 만큼 끔찍했다. 게다가 예술 고등학교 준비부터 시작한 바람에 나의 입시미술 기간은 매우 길고 지루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면밀히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나는 미술학원이 아닌 다른 곳, 나의 외갓집에서 아주 은밀하게 미술의 즐거움, 즉 무언가를 창작해 내는 기쁨을 충족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국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국 런던으로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도 확신도 없었지만, 미술 이외에 다른 일을 잘해낼 자신이 없었기에 작가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불성실한 대학생활을 유학이라는 뒤늦은 처사로 면죄 받고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여전히 막연하고 불확실했던 마음은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새롭게 다시 시작한 공부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흥미로웠고, 잠시 잊고 지냈던 미술의 즐거움을 되찾은 듯한 기분과 이 일이 나뿐만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약 3년 가까운 시간을 공부에 매진하고, 졸업 후 2년을 더 런던에 체류하며 전시 활동과 일을 병행하며 지내다 2013년 9월 13일, 약 5년 반의 타향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짧지 않은 공백기간 덕분에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하기 위한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대학 선배의 초대로 성북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성북동’이란 지명은 으레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수화기를 들며, ‘네, 성북동입니다’라고 주인의 부재를 대신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 머물러 있었다. 성북동은 세월의 모진 풍파에도 부촌의 위용을 뽐내며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성지와도 같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거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성북동을 가보지 않은 서울 촌놈은 이러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 내렸다.
당시 선배의 작업실은 좁은 성북로 12길을 따라 10여 분쯤 올라가면 마주치는 2층 양옥집이었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을 크게 고치지 않고 동료 작가들과 나누어 쓰고 있다는 작업실 내부는 예전 제기동 외갓집을 떠올리게 했다. 마당은 좁았지만 아늑한 느낌이 있었고, 집 안은 적갈색 나무 바닥과 오래된 집 특유의 포근한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두툼한 계단 선반에 손을 얹고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대는 계단을 올라 다다른 선배 작업실의 방바닥에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모노륨 장판이 단정하게 깔려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작업실 안의 모든 풍경이 이제는 다세대 주택으로 새롭게 지어져 그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분명 옛 외갓집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반가운 마음에 작업실 구석구석을 살피며 옛 추억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문득, 선배가 소개해주고 싶은 성북동의 갤러리가 있다며 앞장서 길을 나섰다. 당시 선배는 <서울 지붕 첫 마을, 성북동 옛날 사진전>이란 제목의 전시에 기획 및 참여 작가로 관여하고 있었고, 전람회는 ‘스페이스 오뉴월’이란 공간에서 열리고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크기의 공간에 성북동의 옛 모습 사진들과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손 글씨가 선배의 작업실에서 받은 감흥을 배가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 비로소 한국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첫 번째 방문 이후, 나는 선배를 만나거나 동료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볼 요량으로 종종 성북동을 찾았다. 핸드폰 지도를 들여다보며 더듬더듬 길을 찾느라 주변을 살필 틈 없었던 초행길과 다르게 이제는 동네를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특히 한성대입구역에서부터 성북로를 따라 걸어오는 길가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과 조지훈 시비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을 관찰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성북동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늘 스페이스 오뉴월이었다. 딱히 반겨주는 이는 없었지만, 이 작은 공간이 풍기는 묘한 매력에 점점 도취되는 것 같았다.
10월 중순쯤으로 기억하는데, 성북동 선배와 오랜만에 만난 대학후배들과 오뉴월을 다시 찾아 당시 새로 시작하는 전시를 유심히 관람하고 있던 중, 사무실로 여겨지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선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와 후배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자신을 오뉴월의 대표라는 그는 쾌활한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더니 다짜고짜 작가와 큐레이터들을 위한 교류 프로그램이 시작되니 참가하라는 권유를 해왔다. 갑작스러운 초대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구경이나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 들어 후배들과 근처에서 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신 뒤, 홀로 대표가 일러준 시간과 장소를 찾았다.
스페이스 오뉴월의 이층 세미나실에는 이미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다들 어색한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나 역시도 무슨 표정을 짓고 앉아 있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아까 그 대표가 일어나 다시금 자기 소개를 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 중인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류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준비된 학술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나를 잠시 낯 뜨겁게 만들었던 사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작가 및 큐레이터들이 모두 사전 신청을 거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15주 동안 매주 한 번씩 진행된다고 하니,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는 차치하고서라도 마치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혹은 무임승차객이 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다 결국 자기소개까지 하고 말았다.
어색함과 설렘이 뒤범벅이었던 프로그램의 첫날과는 달리 15주간의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는 참여했던 사람들 간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도 많아졌고, 더러는 전시도 함께하며 교분을 쌓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오뉴월도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성북동에서 기웃거리다 차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앞서 불쑥 자기소개를 건네왔던 대표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성북동이라는 지역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역시 부산 출신의 외지인으로 어떠한 연유로 성북동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역에 말 걸기’라는 명분아래 마을 안에서 다채로운 일을 꾸미고 있었다. 나 역시 서울 태생이긴 하지만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드나들기 시작한 성북동에 대한 알 수 없는 애정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와중, 불현듯 대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나에게 스페이스 오뉴월의 연례행사인 <성북동 마을 축제 메이페스트 (O’NewWall MayFest)>의 기획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왔고, 과거 행사 기획의 일을 해본 경험이 전무한 나는 대표의 제안에 다소 어리둥절했다. 대표가 내게 쥐어준 ‘협력 큐레이터’라는 직함도 낯설었을 뿐더러, 갑작스런 제안에 마을에 대한 이해도도 현저히 낮은 상황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의욕은 앞서지만 동시에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마을 축제의 준비는 나의 미숙함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우려와는 반대로 <메이페스트>에서 나의 역할은 축제의 프로그램들 중, <축발전>과 <오뉴월 버스킹>의 구성을 돕는 것이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오뉴월의 <메이페스트>는 별도의 심사 없이 젊은 작가라면 누구나 그림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걸자(Let’s Hang Whatever You Can Carry)>와 오뉴월 앞 교통섬을 중심으로 골목마다 미디어 작가들의 영상 작품을 설치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BYOB(Bring Your Own Beamer) Seoul> 등의 전시 프로그램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이렇듯 예술 작품의 전시, 관람 방식의 문턱을 낮추고 축제의 형태로 마을과 예술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자처해온 오뉴월의 <메이페스트>는 세 번째 축제를 기점으로 성북동의 작은 가게들
과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진화된 형태의 마을 축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성북동이 서울 시내의 다른 동네들과 달리 가맹점 내지는 파견점포 형태의 가게가 드문 지역적 특성, 그리고 이러한 작은 가게들과 주민들 간의 잦은 왕래가 근래에 보기 드문 공동체적 생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 착안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축발전>이라는 제목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예술적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서 성북동의 작은 가게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만나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각자의 앞날에 건투를 빌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우선 8명의 작가들을 섭외하는 것을 시작으로 참여 작가들과 함께 성북로를 기준으로 넓게 산개해 있는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협업이 가능한 곳을 물색했다. 하지만 가게 섭외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마을 축제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가게와 예술가들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는 우리의 취지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많은 가게 주인들은 장사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혔고 참여 작가들 역시 가게의 섭외가 어려워지며 작업 착수 일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자 최초에 염두에 두었던 계획을 거듭 수정해야만 했다. 손사래 치는 가게 주인들의 모습을 통해 프로젝트가 낭만적인 측면에만 천착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 또한 성북동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오뉴월과 작가들은 새로운 가게들을 물색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거절당한 가게에도 재차 찾아가 마을 축제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결국 성북로 16길에 위치한 ‘백옥 피아노 교습소’, ‘성북동 포토 사진관’, ‘성북 홈패션’을 비롯해 ‘카페 일상’, ‘해동 꽃농원’, ‘탑피탭피 탭댄스 스튜디오’ 등의 장소들과 협업을 완수하고 2014년 5월 9일 <메이페스트: 축발전>을 무사히 오픈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 년이 지났고, 성북동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사계절이 흘러갔다. 걱정했던 것보다 작가로서 많은 일을 하며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성북동과의 만남, 오뉴월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가능했던 일인데, 덕분에 성북동과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사촌들과 이리저리 동네를 누비며 작당모의를 했던 것과 같이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흥미로운 일들을 도모하며 다시금 미술의 즐거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의 기쁨을 다시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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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은 화가다. 전시 ‘祝 發展’은 지난 5월 9일부터 25일까지 성북동에서 개최된 새로운 전시회다. 성북동을 사랑하는 미술가들이 성북동 곳곳의 여덟 가게와 협업한 여덟 개의 작은 전시회로, 예술가와 주민의 삶을 결합하고 동일화하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최윤석은 이 전시의 기획에 참가하였으며, 앞으로도 성북동의 예술을 위해 함께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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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