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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Nov 21. 2017

오늘,
별 볼 일 많은 북정마을에 간다

[4호] 성북동 사람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학│글 김창석

  우리가 매일 눈 뜨고 잠들던 집, 웃음소리, 울음소리로 조용할 날 없던 그 집 앞, 그 골목을 기억하시나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낙서는 누가 했을까요? 한 시절을 간직한 그 골목, 그 집, 그 사람들을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도, 가장 슬픈 시간일 수도 있는,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골목에서 사람 냄새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학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학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 북정마을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뒤로하고 걷기로 한다. 중고등학교 6년을 다녔고, 그 동네 살던 친구가 몇인가? 마을버스는 무슨, 등교하듯 걸음을 옮긴다. 시간은 지났지만 길은 여전하다. 몇몇 간판이 바뀌었고, 새로 지은 건물도 보이지만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성곽길이 열려서 그런지 동네를 잘 돌아다니라는 표식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늘 가던 데로, 성곽길이 아닌 쌍다리에서 북정마을로 바로 향한다. 없던 벽화가 그려지고, 재개발반대 포스터와 문 앞을 지키는 흰둥이가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친구 녀석은 아직 저 골목 끝에 살고 있을까? 서울에 남아있는 마지막 달동네, 성북동 북정마을. 여전한 풍경에 웃음이 먼저 지어지는 마을이다.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지만 다닥다닥 붙은 집과 집, 그 사이 골목과 골목, 그 안에서 쏟아내는 사람 냄새가 만들어내는 힘은 아주 오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이 있고, 서울을 감싸안고 있는 성곽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과 그들의 삶을 담아내는 사진가 이재학이 있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달동네


  “북정마을을 다닌 지 3년이 넘었습니다. 성북동에 여전히 사촌이 살고 있고, 어린 시절 학교도 인근이라 낯선 동네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잠시 잊고 있던 고향을 찾은 사람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천호동에서 꽤 오래살고 있지만 이곳이 더 편하고 더 좋습니다.”


  사진가 이재학은 사라져 가는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북정마을을 찾기 전에는 청계천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중계동 백사마을과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상도동 밤골마을 등 1200만 명이 살아가는 대도시 서울의 그늘을 찾아다니며 사람과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십수년을 찍어왔다. 먹고 사는 일은 별개지만 사진이 아니었다면 오늘은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니, 사진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밥 먹고, 함께 웃는 일이 더 중요하다. 사진전을 관람하러온 지인들이 이제 예쁜 사진 좀 찍으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남들은 잘 가지 않고 보지 않는 풍경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알림>
              위로 조금만 올라오시면 성곽과 마을이 아름다운 북정마을과 북정미술관이 있습니다. 
                                               안보고 가시면 평생 후회 하실 것입니다. 
                                                               - 북정마을 주민 일동 -

  북정마을 가는 길에는 이렇게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글이 적혀있기도 하다.


  북정마을은 서울시에서 선정한 ‘2013 우수마을공동체’에 뽑히기도 했다. 상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가꾸려는 주민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낡고 보잘 것 없는 동네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느 동네보다 따뜻한 마음이 모인 마을입니다. 지금 북정마을에서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북정마을에 도착하면 항상 고향에 온 기분으로 마음이 들뜬다는 이재학 사진가. 그는 무작정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과의 거리만큼 사진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통 카메라 앞에 서면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바뀌거나 어색해 하는 게 보통입니다. 전문 모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작가와 모델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 질 때 가족 같은 마음, 즉 신뢰가 형성되고 친해지면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이 몰래 촬영한 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영정 사진과 반명함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처음엔 무료로 해드리고자 했지만 생각을 바꿔 최소의 비용을 받았다. 물론 인화하고 액자를 하는 비용이 곱절은 더 들었다. 주민들이 동정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래야 그분들도 당당히 와서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급기야 동네주민 자녀의 결혼사진까지 찍어주었다.

  본래 해야 할 작업보다 부수적인 일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하자, 지금까지 일이나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든 적이 없는데 본래 일과 부수적인 일에 구분이 있었겠냐며 웃는다. 주민들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정으로 대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단다.

 

 “제가 누구라고, 밥은 먹었냐, 날 추운데 몸 좀 녹이고 가라,며 자기 자리를 내주고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주는 분들이 어디 있겠어요. 며칠 들르지 않으면 아픈 건 아니냐  전화도 주시고, 더 해드리고 싶고 늘 보고 싶은 분들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잊지 못할 북정마을의 새벽


  지난해 10월에는‘성곽과 자연이 아름다운 성북동 옛날 사진전’을 열었다. 주민들이 전해준 옛 사진들이다. 사진첩 깊숙한 곳에 숨겨둔 소중한 기억을 꺼내 이 작가에게 전했다. 장소도 준비도 주민들이 나서서 했단다. 아름아름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이 북정마을 찾았다. 조용한 동네가 사람들 발길로 시끌벅적했다. 주민들은 먹거리 장터도 만들고 마을을 찾아온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조금 허름하다고 다 없애고 새로 짓는 것 보다 있는 그대로 조금씩 바꿔가는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거죠. 북정마을 새벽 풍경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움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기증하신 사진과 제가 찍은 북정마을 사진을 한 데 모아 상설 전시도 했으면 좋겠어요.”



  북정마을 정류장 옆 북정카페에는 그가 기증받은 동네 주민들 사진이 걸려있다. 말은 카페이지만 어묵과 막걸리를 파는 좁은 판잣집이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엔 사진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힘들고 아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가 기증받은 소중한 사진들과 북정마을의 요즘 모습을 상설 전시할 방법을 모색하는 이유다. 새로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활용해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면, 방문객들로 인해 소소한 수익도 생기고 마을에 활력도 생길 것 같아서다. 물론 넙죽이 아줌마로 불리는 북정이발소 안주인이자 북정카페 주인과 제일 친해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란 말도 잊지 않는다.


  “얼마 전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여러 분야 인사들에게 서울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북촌마을과 도심을 중심으로 안내했죠. 그런데 사진으로 봤던 서울 말고 제가 아는 서울을 보여 달라더군요. 바로 북정마을로 왔죠. 사실 걱정도 들었는데 그들의 첫 마디에 잘했다 싶었죠. 어찌나 원더풀을 외치던지.”


  그들을 따스하게 맞이해 주는 주민들의 다정한 눈길, 낡고 오래되었지만 사람 손때 묻은 집들, 주민들이 열심히 그린 벽화, 마을과 주민들의 오래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이지 않았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오늘 그대로였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행복해요.‘얼마나’가 아니라 그냥 좋아요.” 


  좋아하는 일이라 배고픈 것도 잊고 사진을 찍을 때가 많았고, 아파서 입원할 정도가 아니면 늘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는 사진가 이재학, 행복한 일을 하는 데 무슨 근심이 있겠냐며, 항상 사람과 마주하고, 기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색과 움직임을 담기 위해 보정 프로그램이 아닌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간다며 웃는 사진가 이재학을 만났다. 북정마을에 다녀왔다.



이재학(Lee Jea Hak) 작가 약력

> 개인전 

2001 난곡 (서울 갤러리 룩스)

2003 밤골마을 (서울 갤러리 이룸)

 2006 미사리 (서울 갤러리 브레송)

2010 백사마을 이야기 (서울 갤러리 나우)



김창석은 ‘소셜멘토링 달팽이’ 콘텐츠팀 팀장이고 프리랜서 출판기획자다. 10여 년간 출판기획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소셜멘토링 달팽이’에서 청소년의 ‘하고 싶은 일 찾기’에 필요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성북동 동구마케팅고 입구의 전복 판매점 ‘아발론(ABALONE)’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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