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북 Nov 21. 2017

동네 사랑방,
우리 동네 정육점 ‘한농 정육점’

[4호] 그림+이야기, 우리 이웃 풍경│글 이현숙 · 그림 김철우

  아주 가끔, 퇴근길에 고기를 사러 정육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느 날은 막걸리와 수육, 어느 날은 유리병 속에 담겨 있는 정체모를 뿌리와 잎사귀로 담근 술들로 모두들 거나해져 계신다. 정육점 사장님의 요리 솜씨는 일품이다. 그 맛을 알기에 나의 침샘은 정육점을 들어서면서 이미 샘물처럼 솟아난다. 주는 음식을 거절하기엔 냄새가 너무 유혹적이기도 하다. 막걸리 한 잔과 안주 한 점을 얻어먹는다. ‘집에 가기 싫다’ 불쑥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토록 가고 싶던 집조차 다음 순위로 미뤄버리는 정육점의 즉흥 파티는 흥겹기 그지없다.


  어렸을 적.

  동네 가게 주인은 동네 사람들의 집집마다 가족 상황을 다 꿰고 계셨다. 저 집의 첫째는 누구고 뭘 하고 있으며, 막내의 이름은 뭐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다 꿰고 계셨다. 무언가를 드시고 계실 때 심부름 가면 꼭 먹으라고 나누어 주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게, 그런 가게가 우리 동네 초입에 있다. 참 따듯하다.



  “무슨! 나는 이 동네에서 아그인디… 옆에 있는 ‘옛날 중국집’ 정도는 돼야지.” 하시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심에도 그냥 마구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은 언제 이 동네로 오셨나요? 고향은 어디신가요?   “얼마 안 됐어요.” 그러시더니 “아! 그러고 보니 벌써 18년이 되었네요.” 하신다. 81년도에 전라도 해남에서 올라 오셔서 마장동에서 삶의 터전을 잡으셨단다. 그러다 친구 따라 성북동에 여러 번 오셨다가 아예 여기로 옮기셨단다. 이젠 저 멀리 있는 고향 보다 여기가 더 고향 같다고 말씀 하시는 사장님. 성북동이 너무 좋아 여기 눌러 앉은 게 벌써 18년이란 얘기를 하시는 사장님의 눈빛이 촉촉해 지는 것 같다.

  아침이면 조기 축구를 하고 일요일이면 동네 주민들과 산행을 하며 열심히 사는 사장님. “다들 이렇게 건강관리도 하고 저녁이면 소주 한 잔을 나누며 사는 게 인생의 낙이죠 뭐. 인생 별건가요!” 그러고는 그저 허허 웃고 만다. 하긴 인터뷰라는 형식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 웃음 하나에 그동안 살아온 삶의 굴곡과 신산이 다 엿보인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동네 할머니가 김장 수육고기를 사러 오셨다. 3년 전에 당고개로 이사를 가셨지만 꼭 여기 들러 고기를 사 가신다고 했다. 가만 보니 낯이 익다. 작년에 동네에 놀러 오셨다가 친구 분 따라 우리 집에 오셔서 김장을 해주신 게 기억이 난다. 배추 30포기를 담그는데 다섯 분이나 오셔서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곤 한농 정육에서 사온 수육을 안주 삼아 할머니들과 술 한 잔을 나누었다. 김장 시간보다 술시가 더 길었던 기억, 그게 우리 동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여기서 살아 왔던 이 분들과 계속 여기서 살리라. 유목민처럼

여기 저기 떠돌지 않고 여기서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한농정육점 박상현 사장님


김철우 화백과 글을 쓴 이현숙 씨는 부부다. 김철우 화백은 ‘성북동천’의 대표이고, 이현숙 씨는 회원으로, 두 분이 함께 마을을 온전히 마을답게 만드는 일에 신명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두 분이 사는 동네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정육점에 대한 짧지만 따스한 ‘글+그림’ 이야기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4호는 2014년 '한옥마을 및 한양도성 인근 마을 가꾸기 공동체 희망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별 볼 일 많은 북정마을에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