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때문인가. 한 곳에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지난 여름 또 여행을 떠났다. 일본 후쿠오카로.
사실 일본의 여름은 한국보다 무척이나 무더워서 피해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더위에 약한 나는 사실 갈까 말까 고민하긴 했으나 마음먹었을 때 가야 된다. '여행은 바로 지금!'이라고 외치며 항공권을 예매하고, 후쿠오카 호텔까지 예약 완료. 항공권이랑 호텔만 정해지면 여행 계획 다 세운 것 아닌가. MBTI 계획형인 J도 가끔 P가 될 때가 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데도 말이다.
P인 남편이 오히려 서두를 정도로 후쿠오카 여행 계획은 하루 이틀 만에 다 세웠다. 3박 4일의 짧지만 진한 여행이 되도록 후쿠오카 엑기스만 모아 다녀왔다. 메모장과 구글맵에 저장해 둔 필수 맛집과 카페 그리고 가볼 만한 곳을 브런치에 살포시 공개하기로 했다. '또 떠나는 부부'의 8월의 후쿠오카 이야기, 귤 까먹는 추운 겨울에 꺼내본다.
반팔, 반바지 입는 여름에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지. 3박 4일 짧은 여행에도 챙겨야 할 게 왜 많은지. 30인치 캐리어와 남편의 파리 올림픽 기념 에디션 백팩에는 후쿠오카에서 살 물건들을 넣어올 자리만 남겨둔 채 가득 찼다. 평소 같으면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했겠지만 이번에는 출발 시간에 여유가 있어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했다.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캐리어를 끌며 가는 여행이란, 해방감이 배가 된다. '나 이제 떠나요~ 공항으로'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인천공항은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2터미널 푸드코트에서 허기졌던 배부터 채웠다.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쳤다. 4일 동안 후쿠오카에서 쇼핑할 물건들을 모두 담아도 무료 수화물 무게를 절대 넘지 않도록 계산한 우리는 완벽한 한국인이다. 내 작은 핸드백과 남편의 백팩만 어깨에 메고 면세점을 쓱 둘러보고 이륙할 시간만 기다렸다.
여행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을 꼽는다면 이때가 아닐까. 짐을 부치고 수속을 밟고 면세 구역을 둘러보는 시간 그리고 비행기 연결 통로로 걸어가는 시간. 32도의 무더운 여름 날씨가 잊힐 정도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비행 중 보통 다들 좌석 모니터 속 영화를 볼 때, 비행기가 지나가는 항로만 뚫어지게 보는 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모니터가 없었다. 대신 창밖 하늘과 구름, 지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구름이 저 구름 같고 이 하늘이 저 하늘 같아 보이지만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파란색 수집가라고 해야 할까. 더위는 잠시 잊은 채 설렘을 기록하며 1시간 20분을 날아갔다. 저 밑에 보이는 낮은 집들과 일본어가 적힌 광고판들이 후쿠오카에 도착했음을 알려줬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Visit Japan Web으로 간단하게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누가 봐도 우리 것으로 보이는 도날드덕 네임택이 붙은 캐리어를 찾았다. 호텔이 있는 하카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철을 선택했다. 후쿠오카 공항 출발 - 하카타역 도착인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서는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야 한다. 호기롭게 공항 밖으로 나간 우리는 한국보다 뜨거운 열기에 당황했다. 올림픽 에디션 백팩을 멘 남편의 등은 땀으로 젖기 시작했고, 내 인중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이게 맞아...?"
사람들로 가득 찬 셔틀버스에 몸을 가까스로 끼워 넣고 후쿠오카 공항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