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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인생 모츠나베, 낭만의 나카스강

by 성은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공항역에 내렸다. 땀이 뻘뻘 나니까 얼른 지하로 내려가 전철표를 끊어보자. 일본 여행 3회 차이자 총무를 맡은 남편이 하카타역까지 가는 전철표를 끊었다. 예전 우리나라의 전철표랑 비슷하게 생겼다. 게이트에 쏙 넣으면 구멍이 뿅 뚫려서 나온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 나는 전철표 하나에도 감성을 느끼는 전형적인 MBTI F다.



후쿠오카 공항역에서 하카타역까지는 두 정거장이다.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하카타는 접근성이 좋고, 호텔, 맛집, 카페가 빼곡히 차있다. 우리는 호텔을 예약할 때 공항과의 접근성, 관광 및 쇼핑지와의 거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4군데 정도를 찾아보고 결정한 곳은 바로 더 블라썸 하카타 프리미어다. 하카타 역에서 걸어서 5~8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다. 일본 호텔룸은 좁다고 알려진 터라 조금이라도 넓은 곳을 찾으려고 했는데, 성공적이었다. 룸은 생각보다 널찍했고, 친절한 응대와 호텔 로비에서 나던 향기까지 달콤했다. 3박 가격은 글쎄, 우리가 갔던 무렵에는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



고층룸을 요청했더니 일명 뻥뷰, 하늘이 잘 보이는 룸을 배정받았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열기를 식히고자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짐을 풀었다. 여행을 왔으면 휴식은 사치다. 딱 30분만 쉬고 나가기로 했다. 첫 번째 우리의 목적지는 캐널시티 하카타 그리고 모츠나베 맛집이다.


호텔에서 도보로 8분이면 도착하는 캐널시티 하카타. 후쿠오카 쇼핑의 명소이자, 분수쇼, 건담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 프리미엄 아웃렛과 스타필드를 두루 섭렵한지라 낯섦이 없었다. 입구를 찾느라 헤맸던 것 빼고는 말이다. 쇼핑은 자고로 발이 편해야 오래 할 수 있다. 다음날에 제대로 둘러보기로 하고 우리가 기대하고 기대했던 모츠나베 맛집으로 향했다.



후쿠오카에 오면 꼭 먹어보라는 음식 중 하나가 모츠나베였다. 일본식 소 곱창전골이다. 사실 곱창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국물파인 남편을 따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캐널시티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는 이곳은 마에다야 하카타점이다. 된장 베이스의 모츠나베랑 명란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이 더위에 기다리기 싫어서 오후 4시 50분쯤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줄이 길다. 저녁 영업 시작 시간이 오후 5시부터인데 말이다. 식당 직원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메뉴판을 먼저 준다. 메뉴판을 보다가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사람 구경까지 하고 나니까 우리가 들어갈 시간이다. 한 20분 정도 기다렸다. 바 자리에 앉은 우리의 저녁 메뉴는 당연히 된장 베이스의 모츠나베, 명란을 소금에 절여 담근 젓갈인 멘타이코다.



먼저 한 입에 쏙 넣을 크기의 장어 초밥이 서비스로 나왔다. 서비스치고는 정말 맛있었다. 메뉴에 없는지 찾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보다 더더욱 맛집의 향기가 난다. 우리의 왼쪽에는 혼자 온 일본 분이 모츠나베에 맥주를 한 잔 하고 있고, 우리의 뒤쪽에는 일본 대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친구들이 왁자지껄 얘기를 나눴다. 일본 말이라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괜히 우리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언어는 여행의 묘미 중 하나다.



드디어 된장 모츠나베랑 멘타이코가 나왔다. 국물 요리를 워낙 좋아하는 남편은 이미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보글보글 끓기만을 기다렸다. 국물을 한 술 뜬 순간, 신세계를 맛보았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굉장히 진한데, 느끼하지 않고 잡내 또한 없다. 감칠맛이 싹 돋는다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곱창전골을 먹어보지 않아서 맛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 전, 모츠나베를 또 먹고 싶어서 후쿠오카 당일치기 항공권을 알아봤을 정도다.



모츠나베 속 양배추도 연두부도 맛있고, 곱창 역시 생각보다 질기지 않았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나서 면을 추가해 먹었는데 이것도 일품이다. 멘타이코는 짭짤하니 입맛을 돋운다. 역시 명란은 실패할 일이 없다. 후쿠오카는 명란이 유명하다는 사실. 겨울이 되면 무조건 기억날 이곳의 모츠나베. 기다린 시간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인생 모츠나베가 되었다.



통통해진 배를 두들기며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해가 저무니 뜨거웠던 열기도 누그러졌다. 캐널시티를 돌아 뒤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나카스강 포장마차 거리가 나온다. 나카스 강변에 쭉 늘어선 포장마차들이 보인다. 꼬치, 라멘 등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데, 어느 포장마차는 줄을 설 정도였다. 우리도 강을 바라보며 낭만 있게 꼬치 좀 먹어볼까 했지만 사람들로 가득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쓱 구경만 하며 즐겼다. 나카스강에는 작은 배가 다녔다. 자세히 보니 음식을 파는 식당이자 배였다. 배 안에서 직접 회도 뜨고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다음 후쿠오카 여행 때는 꼭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관광객들도 후쿠오카 사람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며 나카스강 포장마차를 채운다. 기쁨의 한 잔, 위로의 한 잔을 진하게 기울이며, 이 밤에 추억을 담는다. 우리도 이곳, 이 시간 속에서 부대끼며 낭만을 삼킨다. 후쿠오카의 어느 여름밤을 스쳐간 우리의 발자국도 살포시 새겨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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