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스며듦.
참 제 마음을 어쩔 수 없더라고요. 미술관 이후로 자꾸 생각났어요. 큰 키에 흰 셔츠를 입은 그 모습.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오랜만이라 친구한테 상담 좀 할 겸 카페에서 만났답니다.
"네가 연애를? 사랑을 한다고? 네가?"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어요. 8년 지기 이 친구는 말이죠. 뽀송뽀송한 마음을 가진 연애 고수예요. 늘 축축이 마음이 젖어있던 저랑은 반대인 친구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늘 불안한 생활을 이어오던 제가, 지난 사랑에 데어 겁쟁이로 살아오던 제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품다니. 친구가 너무 놀라더군요.
그 남자가 누구냐고 백만 번 묻던 친구. 이래저래 설명을 하던 중, 그 남자가 카페로 들어왔어요. 그때 입었던 흰 셔츠 차림으로 말이죠. 토끼눈이 되어 바라보는데 눈치 빠른 제 친구는 설마 저 남자냐고 물어보더군요.
"맞아. 저분이야." 몇 번이고 상상하고 바랐던 순간이 펼쳐졌어요. 당황한 친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히 한마디 건네더라고요. 그 남자 '37살의 이 카페 사장이자 바리스타 교육자 그리고 책을 쓰기도 했던 사람'이라고, 이쪽 동네에서 커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알만한 사람이라고 하대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믿었는데 제 눈 앞에 있었다니.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람 그래서 표정과 행동에 여유가 넘치는 사람. 대학을 졸업하고 3번의 이직을 하며 발을 동동대는 생활을 하는 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남자.
그래서 마음속 불씨를 끄려고 했습니다.
'사랑'은 '현실'이라고, 내가 지금 행복해야만 충만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아직 완벽히 자리 잡지 못한 나에게 그 남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런 생각을 차곡차곡 모아 불씨에 덮었어요. 근데 말이죠. 생각을 모으는 사이 불씨가 커져버린 거예요. 불꽃같이 화려하진 않아도 모닥불처럼 잔잔하고 은은하게 말이에요.
저는 제 스스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랑은 이렇게 한 순간에 다가오더라고요.
내가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틈을 주지 않더라고요 사랑은. 사랑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시간 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사랑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봐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 그 남자를 만나고 그려지기 시작한 제 작품에 색깔을 입혀도 될까요?
지우개 자국 그만 남기고 굵은 선 따라서 진하게 때로는 연하게 색색깔로 채워나가도 될까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너무 고귀한 일이죠. 그런 '사랑'을 글에 다 담을 순 없지만 몇 글자 적어봅니다.
사랑 넘치는 하루 보내세요.
그 여자와 그 남자가 말하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