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흰 것들의 맑은 슬픔, 그럼에도 붉은 꽃을 피워내려는 열망.
본문
"아무 이상 없대?"
나는 격한 피로와 외로움을 느끼며 양복 재킷을 벗었다. 아내는 그것을 받아 들지 않았다.
"아무 이상도 못 찾겠대."
아내는 짧게 대답했다. 여전히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였다.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씨앗이 된 단편이다.
아무 이상 없다는 말과 아무 이상도 못 찾겠다는 말의 차이.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나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어떤 끈질긴 혼령이 내 목을, 팔다리를 옥죄며 따라다녔을까요. 아프면 울고 꼬집히면 소리치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언제나 달아나고만 싶었어요. 울부짖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버스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어머니,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내고 싶었어요. 내 손등에 흐르는 피를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싶었어요. 무엇이 나를 그토록 괴롭혀서,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겠다고 나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왜 가지 못했을까요, 병신처럼. 왜 훌훌 떠나 이 지긋지긋한 피를 갈지 못했을까요.
살갗에서 기름이 흘러나온다.
문득 아이는 그것이 끔찍해졌다.
아이는 어느 날 아빠가 많이 울어서 엄마가 그를 좋아했다는 말을 떠올린다. 아이의 상처 난 무릎을 빨아주며 엄마의 얼굴에 어리던 헤아릴 수 없는 근심을 떠올린다.
엄마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었을까, 아이는 생각한다.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와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동안 아빠는 아이보다도 더 무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줄곧 무서움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더욱 무서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시간 낭비잖아요"라고 그 여자는 말했다. 그런가, 나는 시간을 낭비해온 건가.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버리잖아.
반면 민화에게는 마치 앞으로 천 년쯤 살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사람처럼 느긋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느긋한 면이 그녀의 강한 일면이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민화는 종종 그에게 묻곤 했다. 마치 그녀에게는 급하고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 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수십 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 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해설
남자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사소한 말들, 열띤 애정을 확인할 수 없는 무연한 태도, 어떤 관계든 지속하고 간직하려 하는 노력이 없는 무심함은 여자에게는 삶에 대한 조용한 열의와 자유를 지켜나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그래서 그와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할 때, 그녀는 사랑이 식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이기적으로 보이기보다는,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 다가온다. 그녀는 언제든 홀연히 떠날 수 있기에 인연을 맺는 데 두려움이 없고, 자신을 스쳐가는 지금의 시간 속에서 더없이 충만한 존재다. 무심함이 주는 투명함은 힘이 세다.
인간에서 식물로 변하겠다는 불가능한 꿈. 그것은 분명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감각에 맞닿아 있는 너머의 세계, 신화의 세계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란 한 사회의 질서와 기준들에 부합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 규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에 언어의 이전이나 이후의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녀는 식물이 되지 않고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존재하기 위해서, <채식주의자>의 영혜처럼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식물이 되었다. 그 새로운 존재 방식은 세속적인 현실을 손쉽게 초월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어떤 면들을 끝까지 거부하며, 치열하고 고요한 내적인 투쟁 안에 자리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
나는 때로 다쳤다. 집착했고 욕망했고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배웠고, 점점 낮아졌고 작아졌고, 그래서 그 가난한 마음으로 삶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래, 깊숙이 들여다보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글쓰기는 나에게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숨 쉴 통로였다. 때로 기적처럼, 때로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내 귀를 끌고 갔다. 나무들과 햇빛과 공기, 어둠과 불 켜진 창들, 죽어간 것들과 살아 꿈틀거리는 것들 속에서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보다 더 생생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