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꿀차

크눌프

헤르만 헤세

by 성은

헤르만 헤세가 쓴 책 중에서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는데, 둘 다 좋아서 밀란 쿤데라를 알기 전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크눌프>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비슷하게 삶의 무상함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본문

맞아,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한 두 사람이 여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그 심연은 오직 사랑으로만 간신히 건너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 심연을 탐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는 없는 거야.

그는 그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경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능력으로 어떤 올바른 일도 시작한 바가 없었고, 그렇게 많은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크눌프가 생각하는 올바른 일은 무엇일까? 철학자들이 책을 써서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올바른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낮은 언덕들은 석양을 받아 노랗게 빛나며, 솜털처럼 부드럽고 밝은 광선 속에 아련하게 녹아 있는 듯하더니, 이제는 벌써 시커멓고 뚜렷한 자태로 나무들과 산등성이와 덤불숲을 하늘 위에 까맣게 그려놓고 있었다. 하늘엔 대낮의 푸른 빛이 여전히 옅게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이미 검푸른 빛이 훨씬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놀랍도록 아름답게 묘사한 장면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어떤 일이 옳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해.

그의 노래들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아무런 해를 끼침 없이, 그리고 어떤 책임감을 느낌도 없이, 이 세상에 와서 존재하다가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나와 크눌프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짧은 순간순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

삶을 마무리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아닐까? 자신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고 늘 과거보다 현재가 좋았으니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작품 소개

그러기에 안정된 시민의 삶을 거부하는 크눌프 역시도 다른 직업인들의 삶을 항상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헤르만 헤세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삶은 크눌프일까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들일까 하고 비교했다. 그런데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를 이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로 연약한 사람들, 유용한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삶이 쉽게 무시당하기 때문에 <크눌프>에서는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삶을 묘사했을 뿐이다.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에 익숙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일깨워줄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함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민음사의 번역이 좀 아쉬운 감이 있는데, <크눌프>의 문장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읽혀서 헤르만 헤세의 문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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