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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창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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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Aug 23. 2024

자막 없는 영화

한국에서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오펜하이머> 영화를 친구들과 보러 가기로 했다.

캠퍼스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가려면 우버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했다.

원래는 버스를 탈 계획이었지만 배차 간격이 30분인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우버를 타야 했다.

바로 옆에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던 월마트와 다르게, 영화관 주변은 생각보다 허허벌판까지는 아니었다.

주변에 가게들도 몇 군데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 구경해 보니 유과를 파는 곳도 있었다.


친구들과 팝콘을 사서 상영관에 들어갔다.

일반 상영관과 아이맥스 상영관이 있었는데, 예매할 때 좌석 수를 보니까 아이맥스 상영관의 좌석 수가 소극장 수준이라 의문을 품고 일반 상영관으로 예매했다.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팝콘을 먹다 보니 광고가 하나둘씩 나왔다.

광고들이 전부 영화 광고라는 것, 그리고 <반지의 제왕>처럼 한참 전에 개봉한 영화를 다시 상영한다는 게 신기했다.


막상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는 즐기기가 어려웠다.

너무 졸렸는지, 자막 없이 영화 보기가 힘들었는지 보다가 졸아버렸다.

영어 자막이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폭탄이 터지는 와중에 작은 목소리로 말하니까 잘 들리지 않아서 내용을 못 따라갔던 것 같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건 이렇듯 사소한 순간들이다.


한국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소중해질 때 내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일리노이 대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정말 많은데,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생전 교회에 가 본 경험이라고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던 친구네 교회에 따라 놀러 간 적밖에 없었는데, 저녁 식사로 한식을 제공한다는 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쌀밥에 겉절이, 불고기, 제육볶음, 그리고 두부조림까지, 거의 일주일 만에 먹는 한식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오트밀과 우유를 먹으며 행복해했는데, 사실은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함께 간 한국인 친구들이 모두 눈에 띄게 밝은 얼굴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서로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움이 밀려오면 그 갑작스러움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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