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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창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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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Aug 16. 2024

에나

캠퍼스에 도착한 것은 개강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안내 메일에서 적어도 개강 일주일 전에 도착해서 국제 학생을 위한 각종 환영행사에 참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의 유학생 비율이 높아서인지 국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참여한 국제 학생 오리엔테이션에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인도인을 포함한 아시아 학생들도 많았고,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 국가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다.

응원단이 무대에 올라와서 응원가와 안무를 알려주는 시간에는 다들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동작을 따라 했다.

우리에게 아카라카가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응원 구호가 있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학생들을 Illini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한 구호로, 누군가가 I-L-L이라고 선창하면 I-N-I라고 후창하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구호를 외치면서, 한국에서 떨어져 나와 붕 떠 있던 내가 이제는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서는 친목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었다.

학생회관과 비슷한 곳인 유니온에서 볼링과 가라오케, 각종 스낵을 즐기는 파티였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는 편이라 스스로를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어쩌다 강당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미국 특유의 친화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저절로 낯선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본, 대만, 중국, 태국,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었다.

국제 학생들의 이름은 대부분 영어 사용자들이 발음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원래 이름 대신 짧게 줄인 이름이나 새로 지은 영어 이름을 알려주었다.

일본에서 온 쇼우타우로는 타로, 리카코는 리카, 유리에는 유리.

중국이나 대만 학생들은 로이, 조슈아, 에이든처럼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나는 원래 이름을 쓰고 싶어서 처음에는 계속 나를 성은이라고 소개했지만, 'ㅓ'와 'ㅡ'를 아무도 발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음하지 못하면 알아듣기 어렵고, 그럼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내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주다가, 결국 영어 이름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이름을 부를 때 "성은아"라고 하는 데 착안하여 지은 에나라는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수다를 떠는 낯선 자아에게 이름을 붙여 준 느낌이었다.

하루에 새로운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났는데도 별로 기빨리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니!

한국에서의 성은이에 가려져 있던 에나가 반가웠다.

에나를 잘 키우면 한국에서도 성은이와 합쳐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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