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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창문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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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Sep 02. 2024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느낌

캠퍼스에서 내가 가장 자주 간 곳을 꼽으라고 하면 도서관이 기숙사와 다이닝홀 다음이다.

중앙도서관과 그레인저 공학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는데, 멀리 움직이기 싫은 날에는 다이닝홀 2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세 곳은 각자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가장 큰 규모의 장서를 자랑하는 중앙도서관에는 학생증을 제시하고 가방을 락커에 보관해야 출입할 수 있는 서고가 있다.

직접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에 들어갔더니, 방 안에 상상 이상으로 빼곡히 들어찬 책장과 책들이 보였다.

서고는 총 10층인데, 한 층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책장이 빽빽하다.

얼마나 빽빽하냐면, 내가 책장 사이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붙어 있다.

대신 책장들이 레일 위에 있어서, 꺼내고 싶은 책이 꽂힌 책장의 버튼을 누르면 책장들이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준다. 

공간의 혁신적인 활용이 놀라웠다.

그 정도로 책이 많아서인지, 한 번에 99권까지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도서관에 대해 설명하며, 캠퍼스의 모든 사람들이 99권씩 빌려도 책이 남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리노이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구경하러 갔던 공학도서관은 색다른 분위기였다.

일리노이 대학교는 공과대학으로 유명해서, 공과대학 캠퍼스가 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공학도서관의 규모도 미국에 있는 공학도서관 가운데 가장 크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중앙도서관이 마치 해리포터 영화에 등장할 것 같다면, 공학도서관은 동화책에 나올 듯한 분홍색과 파란색,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다. 

다이닝홀 건물 2층에 있는 도서관은 가장 규모가 작고 북카페처럼 아기자기했다.

장서의 수는 적었지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법한 도서 위주라서 오히려 책을 고르기가 수월했다. 

사서들이 일하고 있던 중앙도서관이나 공학도서관과는 다르게 근로 학생이 데스크에서 업무를 볼 만큼 친근한 분위기였다.

학생과 스몰토크를 하다가 나와 똑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을 빌렸다.

미국에 오니 불문 원서의 영문 번역본도 읽는구나.

"The heaviest of burdens is therefore simultaneously an image of life's most intense fulfillment. The heavier the burden, the closer our lives come to the earth, the more real and truthful they become. Conversely, the absolute absence of a burden causes man to be lighter than air, to soar into the heights, take leave of the earth and his earthly being, and become only half real, his movements as free as they are insignificant.

What then shall we choose? Weight or lightness?"

한국에서의 삶을 두고 떠나와서 붕 떠 있는 느낌이 들 때, 추를 매달아 나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높은 층고가 주는 개방감 덕분에 답답하지 않은 열람실 한쪽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한국어로 쓰인 책이 없어도, 어디에서나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내가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머무는 곳을 사랑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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