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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창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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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Sep 09. 2024

실어보내는 마음

핸드폰으로 매일 연락해도 바다 건너에서 보내는 편지와 엽서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실물로 편지를 준비하고 우체국에 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는 뇌, 그 뇌에 심박출량의 15퍼센트가 공급된다고 한다.

행동신경과학 리딩과제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니, 서로를 생각하는 행위가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부모님과 남자친구, 그리고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이 캠퍼스타운 근처에 있어서 가까웠지만, 35도의 무더위 속에서 걷다 보니 체감되는 거리는 훨씬 멀었다.

일리노이는 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유명한데, 여름에는 서울 못지않은 높은 기온과 습도를 자랑한다.

밤에도 27도를 유지하고 낮에는 폭염 경보가 내릴 정도이다.

이 더위를 뚫고 부친 엽서들이 잘 도착해야 할 텐데.

기본 요금으로 하면 배송하는 데 10일에서 14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것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이라 최소 2주가 걸린다는 뜻이다.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발신자와 수신자가 모두 잊어버렸을 때 도착할 것 같았다.

배송 추적도 불가능해서 한국으로 가는 도중에 얇은 편지가 어디론가 빠져나가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실어보낸 마음이 무사히 닿기를 빌며 요금을 결제했다.

마음이 한국을 향할 때 하던 또 다른 일은 전자책을 읽는 것이었다.

도서관에는 한국어로 쓰인 책이 없어서, 아이패드로 한국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 읽었다.

백수린 작가의 <폴링 인 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발버둥치는 육체는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

죽음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살게 되더라도 그것 역시 온전히 나만의 몫일 거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결코 살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

삶 대신 죽음에 대해서만 줄곧 생각하던 시절 했던 생각은 죽음이 나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삶도 나의 몫일 것이다.

내 인생의 무게가 가지는 책임과 부담이 버겁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 여기고 서로에게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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