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건축은 많이 접해 보지 않은 생소한 주제였다.
건물의 외형부터 내부에 배치할 가구까지, 건축물의 모든 요소를 미감과 용도를 고려하여 어우러지게 만들고자 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새로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이나 음악 등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건축은 반드시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삶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본문
구원된 건지 들켜버린 건지 알 수 없는 감자가 유키코 손바닥에 가차 없이 올라와 있다.
이 소설의 분위기와 문체가 잘 드러난 문장이라서 가져왔다. 따뜻하고 잔잔한 시선이 느껴진다.
건축가가 되는 것과 화가가 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림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아도 그릴 수 있다. 나는 화가입니다,라고 자칭하는 것도 자유다. 생전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 그림만 그렸던 '화가'의 작품이 후세에 각광받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는 미지의 화가로 갑자기 출현한다. 건축은 어떨까? 아무도 부탁하지 않아도 설계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설계도가 영원히 시공되지 않으면, 그것을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준공한 건축물이 없는 건축가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엄청난 재력이 있지 않은 이상 보통 건축가가 설계도를 시공하려면 누군가의 부탁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건축이 추구하는 심미성에 실용성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요새에 산다는 건 늘 재난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과 같으니 말이지.
본인이 삼가서 잠자코 있는 것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한테는 똑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닿기를 원한다면.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고.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현실 그 자체다.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차분하고 아름다운 묘사가 주를 이루는 담담한 소설이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도 느꼈던 일본 소설 특유의 순진함이 있다.
그래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한국과 비슷한 눅눅함을 느끼며 읽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