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
독파 챌린지로 읽게 된 책이다.
덕분에 배수아 작가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에 대한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불안하다.
무기력하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삶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각 단편이 끝날 때까지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게 현실적이면서 슬프다.
본문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 죽음밖에 생각나지 않아.
어쩐지 저 아래를 계속해서 바라만 보고 있으면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이 생겨, 하고 시인이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열렬한 사랑도 그 감동이 잊히고 나면 그저 그렇고 그런 연애 사건에 지나지 않아."
"너답지 않게 왜 그런 식으로 말하니. 네가 좋아서 한 일이고 너만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 아냐."
생은 변경될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
한 사람의 삶이란 이 세상의 한줌의 먼지와도 같아. 얼마나 우연적이고 얼마나 가벼운가.
이 세상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행복하지 않을 때 가장 절망적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이니까 말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그렇게 그들의 생이 흘러갔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다.
결국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나는 인생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갈망해보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을 박탈당해 버려서,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얻지 못할 두려움까지 함께 생기므로 욕망 자체를 기피한다.
평생 동안 의류회사에서 일한 사람도 그가 매일 저녁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맥주만 마셔대고 있다고 해도, 팬터마임 배우가 되고 싶었다든지, 밤에만 일하는 동물원의 수위가 되고 싶었다든지 하는 종류의 꿈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평생 동안 아무것도 안 할지라도 말이다.
꿈이 없는 것과 꿈이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것. 셋 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왜 무슨 일에든지 강렬하게 집착하지 않니.
"모두들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사랑이 영원하기를, 청춘이 계속 아름답기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잊지 말기를. 그렇지 않아?"
"영원이라는 말은 너무 낯설어. 난 그게 뭔지 몰라. 나에게는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가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 별로 노력하고 싶지도 않아.
미칠 듯한 갈증이나 그리워하는 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아주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그러고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세계가 언제나 내 곁에 있었음을 때때로 느끼게 된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없고, 이미 삶에 대해 체념해 버린 인물들이 슬펐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시도하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자신은 원하는 것이 없다며 뒷걸음질친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더 안쓰러웠다.
갈망은 필연적으로 공포를 동반한다.
그렇지만 한 걸음 물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살아가기보다, 사그라드는 한이 있더라도 강렬하게 타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