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 미야코
본문
그리고 '지금은 안전한 장소에서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는 상태로 새롭게 고정됩니다. 즉, 트라우마 체험은 그때 그 상태로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으로 재편집될 수 있는 셈이지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기, 위험을 피하기, 나와 타인에게 100%를 요구하지 않고 적당한 선 유지하기, 타협점 찾기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요? 요구의 충족 여부는 오로지 어른의 기분과 형편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느 날은 시끄럽다고 때리는가 하면 어느 날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등 일관된 규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봉변을 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요컨대 그동안 '다중 인격'이라고 불려 온 증상은 오히려 자아 상태가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이러한 나'와 '저러한 나'가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증상이 없는 대다수 사람은 '초 다중 인격', 즉 수없이 많은 자아를 지니며 상황에 따라 수시로 상태를 오간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한편, PTSD 증상 자체에 의존하는 예도 있습니다. 플래시백을 일으키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약과 같은 물질이 분비되어 기분이 상쾌하고 편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벽 덕분에 트라우마의 후유증이 '미발현' 상태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중독 행위를 제거하면 트라우마 증상이 속속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불길한 징후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겨도 관계는 깨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의 기분이 항상 똑같은 건 아니야. 남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는 날도 있거든.
여러분이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더구나 신체를 이용하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므로 내담자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습니다.
'놀이의 제공'은 여러 지원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 부담이 적고 효과적이라고 여겨집니다.
'나 자신을 어떻게 지원할지' 배우는 과정, 또한 '어떻게 지원받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지원받고 싶은지'를 명확화하는 과정은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로 남는 사건은 그 사람에게 위기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기'란 무엇일까요? 바로 '연속성이 끊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자신과 세계의 관계에서 연속성을 느낍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어져 있다.', '오늘의 세계와 내일의 세계는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세부적으로는 식사를 꼬박꼬박 하는지, 잠은 잘 자는지, 낮에 깨어 있는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지, 육아 등의 일상 속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하지요.
과거의 자신을 인정한 다음에는 미래의 자신을 지켜야 하지요.
숭배하는 수준까지 신뢰하고 의지하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혐오스럽다', '배신당했다', '상처받았다'며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과거에 자신보다 힘이 강한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대등한 관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지원자는 피지원자보다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힘을 행사하여 당사자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완벽히 해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트라우마는 없습니다.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해서 다른 피해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