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꿀차

마음

나쓰메 소세키

by 성은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선뜻 책을 빌리지 않았던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였다.

친구와 독립서점에 갔을 때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발견했는데, 표지가 정말 예뻐서 이번에는 꼭 읽어야겠다 하고 도서관에서 빌렸다.

전집 12권 중에 친구가 줄거리를 소개해 준 작품이 <마음>이었다.

본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지금보다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아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야.

자네의 기분도 내 대답 한마디에 금세 바뀌지 않았나?

단순하지만 무서운 문장이다. 사람이 한순간에 선과 악을 오갈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고향이 그리웠지. 자네에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을 거야. 태어난 곳은 공기 색깔이 다르고 흙냄새마저 특별하지.

아무리 그의 머릿속이 훌륭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그 자신이 훌륭해지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발견한 거지.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 또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지금 넘어진 사실을 반드시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곤경에 처해 있었던 거야. 나는 넘어진 사실을 끝까지 감추고 싶었어. 동시에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네.

사람을 믿지 못하던 나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게 된 나머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거야.

선생님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는 문장이었다. 숙부와의 서사가 왜 등장했는지. 그토록 원망하고 저주했던 숙부와 자신이 다름없는 존재임을, 어쩌면 모든 인간이 그러함을 깨닫고 지독한 환멸과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직전에 읽은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과 비슷한 두께의 책인데도 기록한 문장이 현저히 적다.

시인과 소설가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동경>보다도 길다.

원문과 번역문의 차이라고 생각해 보겠다.

묘사가 차분하지만 몰입감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전반부 '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선하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이며, 후반부 유서에서는 선생님의 악한 면이 부각된다.

그런데 그의 선과 악은 전혀 지독하지 않으며, 지극히 평범하다.

어느 누구라도 선생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법하기에, 그 마음을 포착해 낸 나쓰메 소세키의 섬세함이 놀라웠다.

극단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보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선악으로부터 삶의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만 더 와닿는 법이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인물들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 같았고, 성차별적인 표현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K가 경동맥을 단번에 끊어서 자살했다고 했을 때 이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실적인 인물 묘사에 집중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는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끄집어냈다는 점이 좋았다.

선악은 양분되지 않으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섭도록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 결과는 특정한 행동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타인에게 도달했을 때 기적도 재앙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끔찍함이자 사랑스러움이다.

마음을 받고 싶다면 그저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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