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꿀차

사랑과 결함

예소연

by 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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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자마자 도서관에서 예약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빌리자마자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랑의 모난 모양들, 특히 가족을 둘러싼 갈등과 성장의 이야기들이 너무 좋았다.

본문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 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나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내가 바뀐다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돌이켜봤을 때 지금은 아주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쪽으로.

그래도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서로에게 사랑을 다짐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 그것이 종국에는 사랑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그런데 삶이라는 게 정말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가? 기어코 해가 되고 마는 것이 삶 아닌가.

뭐든지 적당히. 웃기는 말이지만 어디에도 들어맞는 말.

삶은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기괴한 얼굴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랬어."
"네가 평생 그 외로움을 책임질 수는 없잖아."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말이야. 나이라는 게 사람을 주저하게도 만들지만 뭘 하게도 만들어.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런 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는 걸 버텨왔지 싶었다. 내일과 내일모레의 일을 생각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살아졌지.

어떤 삶에 관여하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그래도 누가 그런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열심히 살았구나, 그런 말.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살아갈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혼자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끔찍해졌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졌다.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를 갈아내지만, 그러다 보면 미래는 미래에 머물 뿐이고 현재는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 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불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무언가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 같았다.

해설

한집에 사는 가족이기에 닮았지만, 다른 몸으로 다른 시대를 살았기에 닮지 않은 사람, 이윽고 부모를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계기는 개개인이 자신을 주조해 온 수많은 역사적 차이의 옹이들을 상기하는 일에 있을지도 모른다.

남의 기분에 따라 내 소중한 것을 빼앗기거나 망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나의 기분에 따라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거나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장이란 이처럼 은총 없는 폭력의 무자비한 과정이다. 무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내가 밀어버렸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라 여겨 베풀었지만 누군가에겐 끝없는 공포였던 감정의 간극에 대해, 한순간 가시거리로 들어온 의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빈손으로 추락하고야 마는 사정에 대해, 더 이상 모를 수 없게 된 몸을 가리켜 어른이라 부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짐과 빚을 주고받으며 사는 관계의 막막함과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며 빚지지 않으려다 피폐해진 관계의 쓸쓸함 모두 이들을 어렵게 만든다.

작가의 말

슬픔에 빠지고 나서야 타인의 슬픔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걸... 후회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또다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급작스럽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면서 그 힘으로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소중했던 사람을 기어코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다소 비참해졌습니다. 이 마음을 늘 절실하게 간직하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더한 아픔, 더한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늘 그들을 좇아 함께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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