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기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절실한 기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by 강성호

절실한 기도

절실한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은 소망이 없다면, 그것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습관을 형성하고 성품을 형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고 그 이야기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으며 간절히 소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 습관을 형성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제게 주어진 하루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이 오직 단 하루였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잘 때까지, 단 하루만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저는 집중해서 최선을 다한 하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하루의 시간이 제가 반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 시간이었습니다. 반복할 수 있는 최소 시간 단위인, 단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이 온전히 제가 마음에 품은 이야기가 구현된 시간이 될 때, 그 시간은 제게 습관을 형성할 최소 시간 단위가 될 것입니다. 3달 뒤 성적이나 당장 한 달 뒤의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단 하루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단 하루만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뜰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저는 그다음 날 아침에 어제와 동일한 하루의 시간을 반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루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저에게는 반복할 시간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제 목표는 오직 제게 주어진 단 하루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6시에 학교 기숙사 기상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깨자마자 저는 바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제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 전날 2시에 잤기 때문에,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학교 친구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고, 아침에 기상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운명처럼 찾아온 놀라운 깨달음을 낭비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 제게 주신 이 하루를 불평으로 시작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첫날을 잊지 못합니다. 새롭게 결심을 하고 잠든 그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늘 하루도 제가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 당시 제 삶의 목표는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목표는 오직 제게 주어진 그 하루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한 하루가 반복되어 좋은 공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매일 9과목의 수업을 들을 때 수업 시작 전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50분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기도를 드리면 50분 수업 내내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최선을 다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에게 이 기도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의지하는 기도였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아래에 있음을 믿기 때문에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2: 캐스피안 왕자 (2008)


나니아 연대기 2편인 카스피안 왕자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화 “캐스피안 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만들어내는 믿음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슬란이 잊혀진 나니아 나라

전편인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에서 나니아 나라를 15년 동안 통치했던 4남매는 1년 만에 다시 나니아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니아의 시간으로는 1300년이 훌쩍 지나버린 뒤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니아는 텔마린족에게 점령되어 무자비한 미라즈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텔마린 족의 왕위 계승자인 캐스피언 왕자와 페벤시 4남매가 힘을 합쳐 미라즈 왕과의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1300여 년 전, 나니아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슬란의 희생과 부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의지한 아담의 후손들 때문에 가능한 승리였습니다. 1300여 년이 지난 나니아 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도 아슬란이며, 아슬란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현재 나니아 나라의 어느 누구도 아슬란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페벤시 4남매가 돌아왔지만, 그들도 아슬란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싸우려고 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루시만이 아슬란을 보았고, 아슬란을 찾았습니다.


아슬란의 침묵과 믿음

텔마린 족이 다스린 300년 동안 아슬란은 침묵했습니다. 아슬란이 나니아 나라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옛날 나니아 나라에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를 이루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슬란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나니아 나라의 백성들은 이제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슬란이 창조한 나니아 나라에서 아슬란은 잊히고 있고, 부정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슬란은 침묵합니다. 나니아 나라의 백성들은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들이 스스로 아슬란을 인격적으로 찾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슬란이 창조한 나니아의 나라에 아슬란의 통치를 구현할 존재가 바로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었습니다.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 4남매가 나니아에 돌아와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것이 바로 아슬란의 통치의 실현이었습니다. 나니아 나라의 전투는 피터 제왕 개인의 지략이나 용맹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터의 지략대로 감행한 선제공격은 엄청난 희생을 치른 패배를 얻었을 뿐입니다. 나니아 나라를 회복할 사명을 가진 피터는 아스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아슬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슬란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다른 사람들마저 설득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피터는 아슬란을 보았다는 루시를 부러워하고, 자신에게도 아슬란이 표증을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아슬란의 신실함을 믿고 찾는 사람

아슬란이 창조한 나니아 나라에 아슬란을 신뢰하지 못하는 대리자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아슬란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해서 아슬란이 나니아에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슬란은 항상 나니아에 있었으며, 자신을 신뢰하며 찾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피터와 대척점에 서 있는 루시는 아슬란과 친밀한 교제를 그리워했고, 그를 찾았고, 그를 향한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시가 아슬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슬란이 자신을 찾는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슬란을 찾는 사람이 아슬란을 만나고, 아슬란과 함께 아슬란이 창조한 세계에서 통치자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조 세계에 승리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피터의 믿음 없음이 불러온 패배와 루시의 믿음이 이룬 승리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터와 루시의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아슬란의 신실함입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백성들을 향해 끝까지 자신을 찾기를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곳에 함께 하시는 아슬란의 신실함이 창조세계인 나니아 나라를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은 이 피조세계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 의해 다스려지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페벤시 남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 힘으로 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실하신 주님을 찾고 예배하는 믿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실함에 의해서 이미 충분히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신실한 이야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믿고 예수님의 약속이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자들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야기는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을 회복시켜 갈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루시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안에서 구현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진실된 것으로 믿고 그 이야기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keyword
이전 13화변화의 다이내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