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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Feb 03. 2022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교회는 예수께서 세상 가운데 자신의 현존이 실재하도록 이루시는 곳이다.

베드로전서 4:7~11

The end of all things is near. Therefore be alert and of sober mind so that you may pray.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Offer hospitality to one another without grumbling. 10 Each of you should use whatever gift you have received to serve others, as faithful stewards of God’s grace in its various forms. 11 If anyone speaks, they should do so as one who speaks the very words of God. If anyone serves, they should do so with the strength God provides, so that in all things God may be praised through Jesus Christ. To him be the glory and the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저는 오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기본적인 욕망과 소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사람 같은데도 그 내면에 열등감이 가득한 경우가 많이 있고 또 그냥 우리가 보기에 대단하지 않아 보일 수 있으나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저희 집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장난이 있습니다. 매일 거의 하는 장난인데요. 이 장난을 하면 아이들이 항상 웃습니다. 제가 하는 장난은 제 자신을 무한히 긍정하고 만족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일단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무한 긍정하면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하면서 웃습니다. 제가 하는 무한 긍정은 이런 겁니다. 


"너무 잘생기면 안 돼!! 딱 아빠만큼만. 더 잘생기면 큰일 나.

키도 더 크면 안 돼!! 키까지 크면 어쩌려고. 노래도 이 정도가 딱 좋아!! 노래까지 잘하면 어쩌려고." 


제가 항상 하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사실은 스스로 생각할 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제가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우리 집 아이들이 많이 웃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기에도 아빠가 그렇게 잘 생기지 않았고 키도 별로 크지 않고 노래도 못하는데 그냥 딱 좋다고 말하면서 만족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웃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볼 때, 저는 항상 자기 자랑을 하는 모습 같아서 아들이 제게 묻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교회에서 성도님들도 아빠가 집에서 이러는 거 알고 있어?" 


그렇게 질문하면, 저는 교회에서는 매우 겸손하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아빠를 알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의 특징입니다.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한없이 타인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도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놓고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예감 찬양팀을 찾아가서 부탁한 말이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강단에서 찬양할 때는 찬양팀이 더 큰 목소리로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저는 장 목사님이 아닙니다." 


저는 장 목사님처럼 찬양을 잘할 수가 없습니다. 잘하면 좋겠지만 제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목소리보다 찬양팀의 목소리가 더 커도 되고 제 목소리를 다 덮어도 되니까 더 크게 불러주면 좋겠다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찬양을 잘하는 것으로, 제가 누구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저 자신을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부르는 찬양을 통해서 용기를 얻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목사님도 부르는데 나도 찬양할 수 있겠다.'


제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 가장 큰 축복 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과의 비교를 멈출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타인과 많이 비교를 했습니다. 타인에 비해서 조금 더 공부를 더 잘하고 싶고 조금 더 키가 크고 싶고 조금 더 잘 생기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계속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 타인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고 싶고 평균 이상이고 싶고 평균 이하의 사람이 되기 싫어하는 마음이 제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라는 올가미

우리가 타인과 비교하여서 나 자신을 바라보면 올가미처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열등감입니다. 나 자신을 바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타인이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평균적인 모습 또는 타인의 모습에 비추어서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큰 특징이 자기중심적으로 만들고 다른 그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다시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여 중요하게 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타인과 비교하고 타인보다 내가 더 뛰어난 것을 중심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열등감과 자기 비하 또는 자기 우상화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처음으로 어길 때도 동일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실은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을 먹으면 자기 자신을 유익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죄라는 것도 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 발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과 비교하여 조금 더 멋진 존재가 되고 더 잘 나고 성공하여 인기를 얻는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성공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이라고 유혹합니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더 많은 인기를 가지고 더 좋은 학벌을 가지고 더 좋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죄가 우리를 올가미로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 18절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체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물과 물질을 그들을 위해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결핍과 타인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재산이고 나의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물질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사랑을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장 분명하게 알려주는 본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첫 번째가 정신을 차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동사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차리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라입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타인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서로 사랑하라고 얘기합니다. 

세 번째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봉사하라고 얘기합니다. 

정리해볼까요. 기도하라고 얘기합니다. 사랑하라고 얘기합니다. 대접하라고 얘기합니다. 봉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원망 없이 대접하고 봉사하는데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이 말은 나의 힘이나 나의 능력이나 '나의 잘남', 내가 가지고 있는 특출함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맡은 청지기로, 그 은혜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봉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1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는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11절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살면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소명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가 말하려면 누가 교회 가운데 말하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처럼 봉사하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말을 합니다. 이 말씀은 설교자인 제게도 엄청난 도전의 말입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이 교회 강단에서 말씀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안양 일심교회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얘기합니다. 봉사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얘기합니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셔서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고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말씀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것들이 다 나의 능력 나의 자랑 나의 특출함으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처럼 봉사했던 유일한 단 한 분이 계십니다. 온전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온전히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이 땅에서 자신의 생애를 봉사하다 생애를 마감한 단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예수님의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한 자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예수님이 가진 자신의 외모를 가지고 드러냈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힘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고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가운데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따라왔던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군중들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선동해 사람들을 규합해 정치력을 모으고 물리력을 모아서 로마 군인들과 대항해 싸울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력, 그가 가지고 있던 당시 대중으로 받고 있던 인기와 사랑, 그를 따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규합해서 사람의 힘을 모아 사람들의 능력으로 무엇인가 정치적인 일을 해보려는 시도를 예수님께서는 결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적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십자가상에서 포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애 가운데 받은 인기, 받은 칭찬, 받고 있는 인정 그 모든 것을 모아서, 그 모든 것을 가장 절정에 이르게 하여 자신의 성공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신이 받고 있는 인기, 자신이 받고 있는 칭찬, 자신이 이룩한 성공 학벌 명예 그 모든 것을 한 군데로 모아 그걸 가장 최고의 절정에 이르러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죄인의 본질이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십자가의 죽음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욕망, 사람으로부터 인기, 사람으로부터 받은 인정 등 자신이 모을 수 있는 대중적인 영향력과 같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 그 자리에서 순종하셨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세상의 현실이 화해되었고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의 인기를 포기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타인이 인정하는 성공을 포기한 바로 그 자리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도무지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저 멀리 저 먼 하늘에서 나타난 일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바로 이 땅의 현실 가운데, 로마의 공권력이 작용하여 정치적인 형벌로서 처벌받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일을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어떻게 드러내셨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이 함께 하신 것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하셨습니다. 자기의 유익과 만족과 성공을 위해 그 메시지를 남용하거나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나타났을 때 바로 그 자리가 인류를 구원하는 자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타인보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타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모두가 손해를 보더라도 나만 이익을 얻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타인보다 나의 성공과 나의 유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세상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실패의 자리,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바로 십자가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여 인간의 죄악과 실패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깊이는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 세상이 지니고 있는 죄악의 깊이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이기고 세상을 이겼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성공의 성공이 인간의 기본적인 열망이고 갈망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 예수님께서는 성공을 지향하는 세상의 모든 사고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지금도 성공을 지향하느냐?

타인을 짓밟고 타인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확실하게 증거 하시고 증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 되었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고, 모든 욕망을 포기한 십자가의 자리에 서신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다시 선한 모습으로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멸망과 심판을 대신 받게 하셔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하나님과 같은 생명 하나님과 같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누리신 그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영생의 참된 의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성경을 읽으실 때 성경에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을 읽을 때마다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말의 뜻은 영원히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도 영벌,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영원히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생명이 지속되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거룩하여지고 하나님처럼 선하여지며 하나님처럼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죄악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 것입니다 만일 그냥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하셨다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옥에서 살든지 천국에서 살든지 영원히 그 벌을 받든 영원히 축복을 받든 영원히 살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생은 그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생명이며, 영생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나의 생명과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기뻐하고 선을 이루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가장 찬란하게 증거 되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그 삶이 인간이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고 가장 행복한 삶이며 가장 찬란한 삶입니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고 가장 복되게 하며 가장 정결하게 만드는 유일한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뜨겁게 사랑하며 정신을 차려 기도하고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사를 따라,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열심을 다해 봉사하는 것 그래서 나의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나타나는 삶, 그 삶을 살아가기를 사도 베드로가 권면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안양일심교회 성도인 우리에게도 권면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입니다. 이 땅 가운데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복 있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온전하고 완전한 복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있고, 그 길 가운데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언제나 공급되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아 우리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으며 우리가 있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만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모습으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존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성령을 통하여 현존하시고 자기 자신을 증거 하시며 우리 안에 선한 능력을 형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사 십자가의 자리에서, 세상이 모두 실패했다고 말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모욕하는 그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며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며, 하나님의 말씀만 온전히 이루어졌던 그 자리를 기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오만한 자의 자리, 악인의 길을 따르는 자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이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 청년들, 우리 안양일심교회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나타나는 그 현존으로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동체 가운데 나타나시는 모습으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을 이루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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