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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Apr 20. 2022

주 여호와의 영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성경본문: 이사야 61장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첫 설교를 하실 때 어떤 본문을 택했는지 아십니까?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은 첫 설교 본문으로 이사야 61장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16~19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저는 오늘 “주 여호와의 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예수님께서 사역 가운데 회당에서 처음으로 설교를 하실 때 어떤 본문을 선택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어떤 본문으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습니까?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선택하신 본문이 나옵니다. 그 본문이 바로 이사야서 61장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이사야서 61장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어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름을 부으신 자라는 이름 이름을 부른 자의 히브리어 단어의 뜻이 메시야입니다. 이 메시야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입니다. 주께서 기름 부은 자, 주께서 택하신 자, 주께서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선택하신 자라는 뜻이 메시야이며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수 백 년 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말씀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고백하는 말씀인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굿 뉴스라고 되어 있고 우리말에서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반드시 무엇인가 어떤 상황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 상황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 포로된 자, 눈먼 자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상황입니다. 즉, 포로 되고 속박되어 있고 그래서 무엇인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소식이 복음입니다. 

성경에 복음이라는 말은 원래 동사였습니다. 동사로서 소식을 전하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단어가 히브리어 베사르이고, 이 단어를 헬라어로 유앙겔리조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에서 유앙겔리온, 즉 에반겔리온 단어가 왔고 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복음입니다.

마라톤 전투에서 전쟁에서 그리스 도시국가가 승리했을 때 그리스 도시국가 백성들에게 그리스의 승리 소식을 전하려고 열심히 달려간 군인이 있었습니다. 소식을 전한 전령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달려가는 거리를 기념해서 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가 생겼습니다. 이처럼 목숨 걸고 달려가 전하고 싶었던 소식이 바로 에반겔리온 복음입니다. 이 전령이 전한 소식은 전쟁을 지게 되면 고국의 모든 사람이 포로가 되고 적국에 의해서 죽임 당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자유롭게 할 소식 에반게리온, 유앙겔리온 곧 복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워하는 자들, 포로 된 자들이 복음을 듣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은 소식이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걸 위해서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통하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며 전파하는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이처럼 눌린 자 고통받는 자를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이와 같은 소식이라면, 우리가 인정해야 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려면 반드시 우리가 마음으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는 복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안에서 하나님께 마땅히 돌리는 영광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고, 나 자신과 나의 이익과 나의 만족을 위해서 그 모든 방향을 사랑의 방향을 나를 향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 아래 억눌려 지내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눌린 자에게 자유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눈먼 자가 다시 보게 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르돈 자학의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반드시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합니다”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은 죄의 개념을 매우 작은 것으로 축소시켰습니다. 우리가 법이 있으면 그 법을 어기면 불법을 저지르면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시된 법을 어기지 않았으면 죄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현대인에게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의 개념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개념은 단순히 율법을 어기는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나보다 낮추는 것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강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전부를 내어주시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뜨리고 배반하여, 썩어지고 아무 필요 없고 아무런 가치 없는 것에 우리의 인생을 내어 던지며 그것에 중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죄인 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영광스럽지 않은 존재로 만들며 하나님을 지극히 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죄인의 상태로 죄를 지으며 살아갈 때 하나님만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학자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죄는 그 뿌리에 있어서 언제나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부당할 정도로 과도하게 높아지는 갈망인데, 부당할 정도로 나를 높이고 부당할 정도로 하나님을 낮추고자 하는 갈망이 죄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지니고 있는 모든 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가장 본질적인 속성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교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죄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억눌려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선포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온전히 깨뜨리기 위하여 죄의 모든 형벌을 예수께서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 죄의 저주와 형벌을 모두 다 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우리에게 그 자유와 구원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을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미래와 현재와 과거의 측면에서 우리의 구원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에서 인간이 어떻게 미래의 문제를 고민하고 살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는데도 여전히 죄의 습관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 여전히 미래에 대한 일을 걱정하고 장래 일에 대한 근심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여호와의 영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재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살아가는 우리는 이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갇힌 자에게 운임을 선포하며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한 우리는 장래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현재로부터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일에서 현재의 삶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 현재의 구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이룬 성취 나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서 내가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것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죄로부터 해방된 형제는 복음을 통하여, 마음이 상한 자가 고쳐지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갇힌 자에게 노려주는 해방이 선포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지금 나의 삶이 온전히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나의 생명도 나의 세상도 나의 재능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나의 이웃과 나의 가족과 우리 교회 성도들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것에 속박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우선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자기 손에 붙드는 거 자기가 현재 잡고 있는 것, 자기가 현재 붙들고 하는 것에 얽매어 노예처럼, 죄인처럼 살아가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전부를 버리시고 희생하셔서 우리를 현재의 압박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우리를 붙들고 있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고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며 복음으로부터 누리는 해방과 자유를 경험하며 살아간다면 현재의 나를 붙들고 있는 내가 붙들고자 하는 그리고 내가 독점하고 염려하는 곳 타인과 나누지 못하는 모든 것에서부터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속박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내가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육십일 장과 누가복음 4장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까? 누가 우리가 지금 현재 붙들고 있는 것을 가장 나누어 주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하고 물질로 가난하며 상처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내가 가진 관심과 내가 가진 사랑을 나눌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내가 나의 현재의 고민과 나의 현재의 집착과 내가 현재 붙들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우리의 구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이사야서 58장에 금식에 관한 부분이 나옵니다. 

이사야서 58장 6절부터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나옵니다 

이사야 58장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금식이라는 것은 나를 낮추는, 나의 육체의 갈급함을 낮추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이 금식은 나의 신앙의 탁월함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이라는 것은 나의 육체의 갈망을 내려놓으므로 내 이웃의 갈망 내 이웃의 피로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도 잘 못하지만 이웃이 나에게 상처 준 거 내 마음에 응어리진 것, 과거에 내가 여전히 품고 있는 기억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속죄와 용서가 없는 관계는 영원히 그 과거의 고통에 붙들려 있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경험하려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삶의 과거에서 온전히 구원의 의뢰를 경험하시려면 우리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러나 도무지 해결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은 그 죄 용서함을 기억하며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속죄하고 용서할 때 과거의 죄로부터의 온전한 해방과 용서와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을 때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갇힌 자에게 모임을 선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사야서에서 약속된 말씀처럼 이 땅에 오셔서 죄인 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여전히 과거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다시 죄를 짓는 습관으로 다시 돌아가려 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시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충만한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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