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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Dec 21. 2022

존재 가치는 누가 증명하는가?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 vs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다니엘 4:19~37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자신의 교만에 대해 인정할 때 교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우주의 주인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자신이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스스로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우주의 주인은 따로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주의 주인이시면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분이셨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고, 사람들에게 폭행당하시고 창에 찔리며 모욕을 당하며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사람들이 교만함으로 단순한 인간 이상이 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려 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보다 낮아져야 했습니다. 그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받기 위해서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고후 5:21)

당신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져할 할 것보다 더 나쁘다고 믿는지(교만), 아니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겸손)에 달려 있습니다(Your ability to handle suffering will depend on whether you believe this world is worse than we deserve or whether you think it’s better than we deserve).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이 복음에 대해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팀 켈러.


“다니엘 4: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느부갓네살에게 임할 형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부를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방법도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물질과 시간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하며 겸손히 그 분의 뜻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다니엘 5:1~16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벨사살 왕이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쓴 글씨를 보고 정신이 혼미할 때에 왕비가 등장합니다.(10절) 여기서 왕비는 벨사살 왕의 부인이 아니라 선대 왕의 왕비로 추정됩니다. (presumably the queen mother, often a significant political figure in an ancient court. in Goldingay, Daniel, 109.)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에 대해서 깨달은 것처럼, 다니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다니엘을 살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다니엘 4:18),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는 사람.(다니엘 5:11~12)


하지만 벨사살 왕의 집권기에 다니엘은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의 통치가 끝난 이후 다니엘의 영향력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왕대비, 아마도 느부갓네살의 왕비였거나 벨사살(느부갓네살의 손자)의 어머니였던 왕비는 다니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무런 대답을 줄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다니엘은 바른 답을 줄 수 있었습니다.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니엘을 찾아와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우리를 소생시키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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