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열한백구 Sep 09. 2019

탕수육의 의미

정신과 자의입원의 한계

나이트 근무 인계를 받고 불 꺼진 병동을 바라본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도착음이 들린다.

'이 시간에 누구지?'

현황판을 보니 외박 중인 몇몇 환자가 있으나, 오늘 귀원하는 환자는 없다.

늦은 시간에 면회를 왔을 수 도 있고, 외박 중인 환자가

문제가 생겨 일찍 귀원하는 것일 수 도 있다.


엘리베이터와 철문 사이에 낯익은 실루엣이 보인다.

"이거 드리려고 왔어요"

철문 사이로 검은색 봉지를 내민다.

봉지를 받으며 나는 물었다.

"내일 귀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건 뭐예요?

검은 봉지가 대답했다.

"이거 드시라고요. 아직 일 안 끝났어요. 다시 가봐야 해요."


간호사실로 돌아와 봉지를 열어보니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탕수육이 들어 있다.

"들어올 때 탕수육~"

며칠 전 외박을 나가는 환자에게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었는데

기억하고 있다가 챙겨주러 온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앞으로는 온 맘과 정성으로 잘 대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음날.

또 나이트 출근이다.

현황판에 지워져야 할 이름이 그대로 있다.

김## (9/1~ 미귀원)

어제 탕수육을 주고 갔던 환자가 미 귀원 중이라는 인계를 들었다.

의료보호환자는 최대 5대 6일 외박이 가능하기에 자정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퇴원 처리를 해야 한다는 인계도 함께 받았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환자이기에 걱정이 된다.

어디 모텔에 들어앉아 깡소주를 마시고 있을 환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받지 않는다.

알코올 의존증에게 미귀원으로 인한 퇴원은 종종 있는 일이기는 하나

외출/외박 시 음주상태로 귀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환자이기에 더 신경 쓰인다.




이틀을 쉬고 난 뒤의 출근이라 십 분 정도 일찍 병동에 도착했다.

인계를 받기 전 인계장을 훑어본다.


"김## 님 자살하셨데요. 어제 경찰에서 전화 왔어요. ## 쪽 철길 옆에 나무에서 발견했다고."


나에게 탕수육을 건네주고 일이 덜 끝나서 가봐야 한다던 그가 향한 곳은

철길 옆의 나무 숲이었다.

매 달 5박 6일의 외박을 나가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으로

수급비에 보태어 모친께 전달하던 그였다.

일당을 받 여기저기 빌린 돈을 갚았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빚진 것이 없었을 텐데 왜 나에게 탕수육을 주고 간 것일까?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자살사고를 발견하지 못했었나?

목이 다. 며칠 전에 얻어먹은 탕수육이 목에 걸린 것인지

그의 마지막을 본 사람으로서의 죄책감 때문인지.



몇 년이 지났다.

나이트 근무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 경찰서 형사과입니다. 입원하고 계신 환자분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죄송합니다. 전화 상으로는 환자 분의 개인정보를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라고 거기 입원 중이라고 하던데 집에서 투신했습니다."

외박 중이던 환자의 사망 사실을 듣게 되었다. 전화상으로 환자의 정보를 알려줘서는 안 되지만

당황한 나머지 몇까지 정보를 말해 주었다.

"내일 영장 들고 병원으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용하시던 병실 그대로 유지 부탁드립니다."


외박 일정이 정해지면 안정제를 찾던 환자다.

면담 중에서 자신의 자살계획을 이야기했던 환자다.

외박 중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날짜만 정해지면 잠도 못 자고, 안정제를 요구했었다.

이런 환자도 외출을 요구하면 보내주어야 한다.

주치의가 외출 요구를 거부할 순 있으나. 외출이 거부되면 퇴원을 요구할 것이고 그 퇴원은 막을 수 없다.


정신질환은 한 가지 질병이 아니다.

정신장애와 지적장애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하나의 법으로 다양한 진단을 가진 이들을 묶어버린다.

국제 질병분류(ICD)상으로  다양한 진단명으로 나누어지지만 그 나눔 또한 의미가 없다.

100명의 사람에게 각 각이 가지는 100가지 세상이 있다면,

100명의 정신질환자에게는 100가지의 진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00가지 진단에 맞는 100가지 제도를 기대할 순 없지만,

최소한 중증도에 맞는 차별적인 수가와 인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 지기를 희망해 본다.  

살아있어야 인권도 있는 것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