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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Oct 14. 2019

등산하는 간호사

산을 좋아했던...

타지 생활로 외로웠을 무렵 등산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증가하며 다양한 앱이 나올 시기였는데,

지인으로부터 등산 관련 앱을 소개받았다.

마치 게임처럼 등산거리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고 순위가 메겨지며,

각 산마다 반짝이는 배지를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올라가지?'

라는 생각으로 산을 멀리했었는데 앱으로 인해 등산을 시작했고

그 앱 때문에 등산을 그만두었다.(과도한 업데이트로 인해 레벨 업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등산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게임에 빠져 있었음을 인정한다.


2년 정도 산을 열심히 다녔다.

근무하는 날은 가까운 산, 쉬는 날은 먼 산을 다녔고,

힘들게 올라간 김에 여러 개의 배지를 받고자

능선을 타고 산봉우리를 도는 종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렇게 1500km의 산길을 걸었음을 앱을 통해 확인했다.

 

불순한(?) 의도로 등산을 시작했지만,

산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산은 나에게 체중감량을 주었고, 무릎 연골을 가져갔다.

때때로 소소한 깨달음을 던져주기도 했는데,

거창하지도 않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입에서 나는 단내와 함께 찾아오는 '그것'은

내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의 산행은 더 이상 진행형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더 늦기 전에 산에서 느꼈던

몇몇을 기록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걷게 되면 뇌가 활성화되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상들은

걷는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하나씩 자취를 감추게 는데,

나의 경우에는 15km가 넘어가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곤 했다.

비어있는 머릿속으로 시원한  콜라 한 모금이나 따뜻한 샤워와

같은 원초적인 본능들 채워지게 되고,

산을 내려와 시원한 콜라를 마시게 되

지나왔던 길들이 꿈속처럼 아련해진다.

'기억은 있는데 감정이 없는', '먼 옛날의 추억'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방금 있었 일이 머나먼 옛 일 같이 느껴지니, 산을 오르기 전에  속에 담 있던 직장이나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그보다 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게 된다.

행군이나 국토대장정 따위를 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 비슷다고 생각한다.

'산에다가 놓고 온다.'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분명 '무엇'인가를 놓아두고 왔음을 알 수 있다.




앱으로 각 산에 배정된 배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상까지 가야 한다.

힘들게 정상에 다다르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배지 획득에 대한 알림이 뜬다.

알림 창을 확인하고 정상 주변을 둘러봤을 때,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산 위에서의 감동적인 기억은 대부분 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봤을 때,

바위에 걸터앉아 한잔의 커피를 마실 때, 또는 여유로운 하산길에서 마주하게 된다.

(산을 좋아하는 각자의 방식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힙니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를 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을뿐더러

정상을 밞아야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멋진 풍경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없다.

산행에서 산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정상에 오르게 되면 허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려가는 일만 남은 상태에서 표지석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질러봐야

아무것도 채워지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정상을 목표로 한 등산은 허무하다.

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즐거운 산행이 된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다.

애벌레들이 뒤엉켜 기둥을 이루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힘들게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은 기둥에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

주인공 애벌레가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도착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음을 이야기하려는 주인공에게 옆에 있던 애벌레가 말한다.

"조용히 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밑에 있는 애들이 알게 해선 안돼"라고






등산을 하면서 맘에 들지 않는 풍경을 마주할 때면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움직이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게 되니 말이다.

새로운 풍경 더 나을 수도 있고  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움직여야 주변의 풍경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것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움직일 용기를 내지 못한다.


"저는 지금 제 현실이 너무 싫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싶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어요"

이런 고민을 가진 젊은 친구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움직고,  다른 한 부류는  자리에 머문다.

시간이 지난 후, 무엇이 되었든 시도하고 움직였던 쪽은 결과를 떠나 자신이 거부하던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 반면 자리에 머물렀던 쪽은 몇 년 뒤에도 똑같은 고민을 이야기한다.

계절이 바뀔 때까지 진득하게 한 곳을 지키고 있을 수 있다면, 어쩌면 죽지 않고 새로운 풍경을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로또 당첨을 바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산과 함께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브런치를 통해 두 번째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당장은 작가의 서랍에 묵혀두고 싶다.

시간이 지난 후 잘 익은 그 글을 맛있게 조리할 수

있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아이젠과 눈길이 맞닿는 느낌을 좋아한다.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의 대조는 생각만 해도 설렌다.


비 내리는 여름 산을 좋아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숨죽이고 있던 식물들이 빗방울을 맞이하며 방긋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산을 올라 바라보는 봄날의 풍경을 좋아한다.

세상을 집어삼킨 해일과도 같은 구름은 마치 영화 속 CG를 보는 듯하다.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을 좋아한다.

냄새가 나진 않겠지만 코 끝에서 가을향을

느낄 수 있다.


밤새 적신 빗물로 촉촉해진 아침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 나무 사이의 바람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다.


깊은 산의 능선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높이의 세상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한 길을 걷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하다.






스마트폰 앱 중독으로 등산을 다녔음을 앞서 고백했다.

그러나 그 앱 덕분에 어쩌면 평생을 가보지 않았을,

아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음에

'트랭글'(앱 이름) 개발자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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