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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an 10. 2020

히치하이킹_Thailand

Manners maketh,

푸치파로 가는 하루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푸치파 직행 버스는 아니다. 푸치파로 가는 길에 있는 ‘틍’까지만 운행하는 버스다. 틍에서 푸치파까지 가는 버스나 쏭테우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이 방법이 금전적으로 조금 더 아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틍까지는 이상 없이 도착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틍부터 푸치파까지는 산길이라 큰 버스가 다닐 수 없고 쏭테우뿐인데 쏭테우가 가격이 800바트다. 너무 비싸다. 하는 수 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운영하는 쏭테우 말고, 길거리의 쏭테우를 상대로 흥정을 해봤지만 가격은 같았다.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게다가 1400m 고지에 있는 곳이라 설령 걷는다 하더라도 무진장 힘들 거다. 전략 회의 끝에 우리는 히치하이킹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카페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종이를 얻고, 유성매직으로 태국어를 그리다시피 해서 피켓을 만들었다. 번역기를 이용해 ‘여기까지 태워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같은 어설픈 태국어도 준비했다. 막상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서있으니 좀 떨린다. 떨리는 마음에다 수줍음을 더 해 몇 대의 차는 그냥 보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10분 뒤, 자그마치 10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한 픽업트럭이 우리를 지나치길래 ‘그러려니’하고 뒤에 따라오는 차를 노리는데, 갑자기 크랙션이 울렸다. 우리의 서투른 태국어를 알아본 태국 청년 4명이 비상등을 켜고 우리를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짐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빠 보이는 그들을 붙잡아 세우고 공부해뒀던 태국어를 써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쉽게도 그들은 푸치파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빠져 다른 곳으로 향했다. 우리는 중간에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 만큼이면 충분했다. 이제는 걸어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차를 또 금세 얻어 탔다. 우릴 이미 지나간 차였는데, 본인이 싣고 가던 짐을 다 내려놓고 돌아와 우리를 태워줬다. 어쩜 이렇게나 다들 친절할까?



푸치파 이후에도 우린 히치하이킹을 해서 치앙라이를 거쳐 치앙마이까지 올 수 있었다. 태국에서의 히치하이킹은 중독성이 있다. 로컬 사람들을 만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이 픽업트럭이라 짐칸에 탈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심지어 하늘을 보며 누워 가는 낭만도 있다. 물론 비가 와서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기분 좋은 태국이다. 사람들이 너무 따뜻하다. 우리를 태워주셨던 모든 분들부터, 가난한 여행자처럼 보인다고 현금을 챙겨주시려던 아주머님, 응원의 의미로 목걸이 부적을 챙겨주시던 어르신까지 너무 많은 호의를 받았다. 이걸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판단하게 된다. 태국은 분명 잘 사는 나라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 사람의 호의로 인해 그들이 잘 사는 나라 같아 보였다. 불교국가라 덕을 쌓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들의 삶에 여유가 좀 있으니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지난번에 깨달은 바와 같이 호의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나누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님이라는 건 알지만, 아직 덜 성숙한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몇 사람의 친절이 나라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고, 또 오고 싶은 곳으로 탈바꿈시킨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사람일까? 길을 물어오던 사람에게 친절히 굴었던가?


갚을게 많다. 내가 가진 게 얼마나 있겠냐만은, 한국에 돌아가면 지나가는 과객들, 여행객들에게 내가 가진 걸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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