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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May 23. 2022

Good bye & Love myself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이야기_외전 / Day 0 / 0km

    아직 내 몸엔 까미노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손등에 생겼던 햇빛 알레르기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고, 발 뒤꿈치에는 여전히 피가 고인 물집이 있다. 피부도 새까맣다. 시간이 지나 피부색이 다시 하얗게 돌아오듯, 언젠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손도 다시 매끈해지고, 멀쩡히 걸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까미노가 좋긴 좋았나 보다. 뭔가 내 몸에 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이랄까.


아름다웠던 마무리


    끝나는 게 아쉬운가 보다. 도대체 몇 번의 끝맺음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박으로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순간, 다음날 산티아고 대성당을 눈에 담던 순간, 까미노 완주 인증서를 받던 순간, 단체로 저녁식사를 했던 순간, 함께 걸었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성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던 순간, 매 순간마다 나는 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렇게 끝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더 멋진 끝맺음을 위해 찾아다니는 느낌이 든다. 모든 이별엔 늘 아쉬움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계속해서 끝을 찾는 건 아닐까. 말뜻 그대로의 ‘Good bye’ 아쉬움 없는 멋진 끝맺음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나?


    결국 나는 좀 더 멋진 끝맺음을 찾아 피스테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세상의 끝이라는 별칭이 붙은 곳이니, 그곳에선 진정한 의미의 끝을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걸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떠나갔다. 종우도, 욱희도, 안나도 전부 다음 일정을 향해 나아갔다. 영준이 형님만이 불가리아의 본인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기다리며 나와 함께 산티아고에 머물러 주었는데, 영준이 형님마저 시간이 되어 떠나갔다. 이제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결국 다시 또 혼자가 되어 피스테라까지 걸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종우, 욱희, 안나, 그리고 마리아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다녀오긴 했지만, 이렇게 오롯이 혼자가 된 김에 또다시 한번 걸어보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아니 덕분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때문에 산티아고에서 오도 가도 못하며 발이 묶여버렸는데, 그걸 핑계 삼아 한 번 더, 멋진 끝을 찾아 조금 더 걸어보려 하는 것이다. 비록 88 + a km의 짧은 길이지만, 뒤에서 날 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앞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까미노는 또 처음이라 설렌다.


마리아와의 이별 / 안나와의 이별
욱희와의 이별 / 영준이 형님과의 마지막 식사


0km 비석을 찾아서 (버스 타고 다녀왔을 때 찍어둔 사진)


    나의 가치관을 구축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희생'이다. 함께하던 친구들과의 멋진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선택했던 ‘버스로 피스테라, 묵시아 다녀오기'가 희생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게 정말 오롯이 내가 원하던 일이었냐고 누군가 내게 물을 때, ‘그럼!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한편으로는 걸어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조금은 과장해서 이 또한 내가 희생한 것이라고 쳐보자.

    난 연애를 할 때도 ‘희생’이라는 단어를 가장 큰 키워드로 삼는다. 희생을 통해 사랑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힘들 테지만 희생을 통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좋은 방향이 될 수 있게 행동해야 사랑이 유지된다고 믿는 편이라 그런가 보다. 또 단순한 연애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으로 정해둔 마지노선을 상대가 넘지 않는다면, 나보다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 하고,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다. 나의 이런 가치관은 까미노에서도 똑같이 발현되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조금 접어두더라도, 남들이 편하게, 남들을 위해 보내는 순간들은 예전부터, 그리고 오늘날의 이 까미노까지 꽤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순간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다가 문득, 날 챙겨주려고 하는 사람, 날 이끌어 주려고 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본인의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남들에게 희생하느라, 남들을 챙기느라 바빠서 그가 주는 희생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쎄, 정말 있었는지, 그게 누구였는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딘가에 나를 위해 희생하려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긴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금 받아보고 싶다.

    그러나, 누가 내게 사랑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니까

    우선 나부터 내게 사랑을 좀 주자. 그리고 그걸 잘 받아보자.


피스테라의 풍경

    내게 사랑을 주는 첫 번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와 일정을 조율하고, 이건 네가 원하는 거, 저건 내가 원하는 거 하며 중간을 찾아가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기 위해 피스테라까지 걸어가는 걸 선택한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순간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 말이다. 쉽게 말해 정말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해보고 싶어서 말이다. 걷다가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이렇게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나만의 또 다른 챌린지를 하나 만들고, 그를 극복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보고 싶다.


    나는 나를 사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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