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되어선 안 될 참혹한 역사
킬링필드와 뚜올슬랭 수용소에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걸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믿기지 않는다. 괜히 두 손이 모아지고,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오디오 가이드에 나오는 설명을 한 문장이라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억하고, 잊어선 안 될 것만 같은 곳이었다.
두 곳 모두 캄보디아의 참혹한 역사를 품은 장소이기에, 모든 부분이 조심스럽다. 둘러보는 내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힘들었고, 옆 사람과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글을 적는 것 또한 그들의 안식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굉장히 조심스럽다. 이렇게 그곳에 대해서 글을 써내는 일이 그들의 평온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도대체 그는 어떤 세상을 원했기에 이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해야만 했을까? 도대체 믿음이 뭐길래, 사상이 뭐길래, 죄 없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을까? 불과 이 대학살이 일어난 게 5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제로 지금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학살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기억하는 사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두 곳을 투어 하며 들었던 오디오 가이드 중 한마디이다.
사실 이곳이 ‘관광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게 불편하다. 분명 관광을 위한 곳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것은 보다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게끔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다. 이곳은 기억되어야 하는 곳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사명감을 품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는 곳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이 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사명감이 생겼음을 느낀다. 웃고 떠드는 일은 없이 슬픈 이야기들 투성이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고 이 곳의 슬픔을 알려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오래 기억해서 이 잔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기억하는 일 자체로 지금 당장 크게 달라지게 만들 순 없다. 기억한다고 해서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닐 테니까. 다만 혹여나 이런 슬픈 일이 반복되려고 할 때, 이 역사를 떠올리며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어쩌면 지금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을 수도 있는 학살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사명을 품고서 다시 있어서는 안 될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두 곳 모두 한국의 슬픈 역사와 접점이 많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학살이 있었고, 뚜올슬랭 수용소는 우리나라의 ‘서대문 형무소’와 닮은 점이 많다. 나는 그곳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걸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함께 기억하자고 이야기할까? 해외의 관광지를 다니면서 관련 위키백과를 수십 번, 수백 번 읽었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서대문 형무소’, 무겁고 진중하게 기억되어야만 하는 곳이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도시락 까먹기 바빴던 추억의 장소로서만 존재하는 게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아버지가 ‘지금’을 강조하시며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사실 건강을 챙기라고 늘 해주시는 말씀이지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날 만드니,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든다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과거의 역사가 오늘을 만들고, 다시 오늘은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다. 아팠던, 잔혹했던, 과거의 일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자유를 위해 싸우고 투쟁하신 분들이 지금의 빛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 빛을 미래의 사람들에게 잘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 미래의 역사는 우리다.
부디 아무 죄 없이 죽임을 당한 그들이 저 건너의 세상에선 편안하기를,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 손녀 손자들의 세상엔 더 이상의 이런 비극이 없기를, 웃음꽃만 만연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