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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Sep 02. 2020

달리는 기차 안_To Shanghai,China

26시간짜리

  


  상하이로 달려가는 기차 안이다.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니, 벌써 11시간째 달려가고 있다.



    나는 HardSeat등급을 선택했지만, 내게 할당된 좌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HardSeat과 입석의 가격이 같으니, HardSeat 객차에 타서 아무 데나 앉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진 표에 객차 번호와 좌석 번호가 명백하게 있었다. 나는 그저 일련번호 일 것이라 생각했던 게 객차 번호와 좌석번호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 탓에 나는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분명 자리를 뺏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이제야 좀 경계가 풀렸음을 느낀다. 확실한 내 자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도 있지만, 나와 마주 보고 가는 사람들과 10시간 만에 말을 텄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잠든 사이에 그들은 카드게임을 했고,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깼다. 그들은 그게 미안했는지 내게 카드 게임을 권했다. 다행히 내가 베트남에서 해본 것과 비슷한 룰이라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하는 말이라곤 ‘니하오’ ‘팅부동’ ‘한꿔’뿐이지만 손짓 발짓으로 그들과 대화를 즐겁게 나눴다.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렸다. 지나가는 카트에서 저녁식사도 사 먹고, 야식으로 먹을 컵라면도 사고. 다행이다.


    오랜만에 추위를 느꼈다. 여태 추웠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추위는 심상치 않다. 난닝에선 반바지로 돌아다녀도 충분한 날씨라 반바지를 입고 출발했는데,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릴 때마다 다리 사이로 초겨울이 느껴진다. 확실히 내가 겨울을 따라가고 있긴 한가보다.



    조금 아쉽지만, 결국 중국 여행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러 가는 길목에 불과한 느낌이 든다. 26시간짜리 기차를 타는 특별한 경험 조차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간접적으로 미리 체험해보기 위함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긴 시간 달리는 기차를 미리 타봄으로써 준비를 하게 된달까? 예를 들면 영화를 미리 좀 다운로드하여 둔다던가, 책을 챙긴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중국에서의 재밌는, 아니 재밌다기보단 흥미로운 시간들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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