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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Sep 20. 2020

대한민국 임시정부_Shanghai,China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와 지하철

    아침 일찍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많은 일들을 하루 만에 몰아쳤다. 분명 26시간 동안의 기차가 주는 피로함에, ‘숙소에 체크인하고 좀 쉬자.’라고 다짐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 다짐이 전부 사라졌다. 쉬기에는 애매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숙소 때문이다. 누워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숙소. 그래, 차라리 밖을 돌아다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 과제를 위해 연극 <과부들>을 봤다. 나는 그 연극이 끝났을 때,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오열을 했다. ‘극 중의 등장인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또 평화롭게 지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관련도 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의 희생이 크게 다가왔고, 그게 참 감사했으며, 잊고 지냈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 덕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뼈저리게 느끼며 울었던 것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다녀왔다. 아쉽게도 <과부들> 때만큼의 오열은 아니지만, 울컥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아마 <과부들>을 보기 전에 이곳에 왔더라면 여기서 오열을 했을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뼈저리게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독립운동가분들이 계셨던 장소나, 쓰시던 물건들은 사실 그렇게 나의 발걸음을 붙잡진 못했다. 그저 ‘아 그렇구나’ '신기하다'하며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그분들이 찍힌 사진들이 나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교과서에서 몇 번이고 봤던 사진들이고, 광복절이 되면 인터넷에서 쉽게 보는 사진들인데, 괜히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워낙 크게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사진이 주는 느낌이 전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분들의 표정이 읽혔다. 그중 마지막에 본 사진 속의 표정이 가장 압권이었는데, 그 사진은 이제 독립을 이룩한 고국의 땅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졌음에도 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웃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웃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함께하다 먼저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분들의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한, 먼저 떠나간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며, 웃지 못하는 사진 속의 독립운동가들, 그분들께서 지켜내신 이 땅과, 이 자유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이 평화를 잘 누리고, 유지하며 그분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출처 : 한국일보





    시내로 나갈 때와 숙소로 들어올 땐 지하철을 탔다. 나는 대도시를 여행하며 지하철을 타면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열차 속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든다. 사람들마다 각자 가진 이야기가 있을 테고, 그 이야기를 혼자 만들어보면서 나만의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저 사람은 지금 어딜 가는 걸까?', '지하철을 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며 나는 관객이 된다. 그 기분이 참 묘하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정말 연극이나 영화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맘이 편안해진다. 글쎄, 우스개로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라, 내게는 책임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수없이 지하철을 탔음이 분명할 텐데, 왜 그땐 전혀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이게 아마 여행자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한발 떨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에 내 책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여행자, 이방인이 가진 특권은 아닐까?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잔뜩 비워낸 여행자가 아니고선 그들의 이야기를 어찌 들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이야기의,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라 분명 책임이 있을 테다. 그리고 가끔은 그 책임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 이야기도 한 발짝 멀리서, 남 일 보듯 바라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 너무 무겁게만 느끼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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