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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05. 2021

시베리아 횡단 열차_닷새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다섯 번째밤의 기록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기차에서의 하루가 또 흘렀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이제는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기차에서의 시간을 즐기려 하는 정도다.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밤이 되어 기차에 적막이 찾아오면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참 단순한 시간의 반복이지만, 그 시간이 참 특별하다. 그리고 이 특별한 시간을 더 온전히 향유하고 싶다.


    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는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의 평범한 하루


    기차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아쉽다. 이 기차가 그만큼 좋아졌다. 물론,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불편함 없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 한몫한다. 만일 이들과 그저 같은 숙소에 머무는 것으로 그쳤다면 어땠을까? 아마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는 게 전부였겠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텐데, 이렇게 기차 안에서 만나니 그냥 스치는 게 아니다. 참 찐하게 스친다. 이 모든 게 문득 감사하다.


화기애애한 7호차


    기차는 모든 걸 다 갖추진 않았다. 샤워 시설도 없고, 침대는 좁다. 먹을 것도 제한적이라 한편으론 계속해서 배가 고픈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필요한 건 다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혼자만의 시간, 멋진 풍경, 그리고 재밌는 사람들까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지금도 재밌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밤이 되어 적막이 찾아왔고,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별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 속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이 멋지디 멋진 순간이 곧 끝난다는 사실이 참 아쉽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셈이다.(물론 아직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 것은 대학시절 게시판에 붙은 광고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아마 그때부터 이 여행을 꿈꿔 온 것 같다. 이제와 드는 생각이지만 그땐 왜 그렇게 학교 생활에 목을 매었을까. 하루라도 학교 생활에 빠지게 되면 학교에서 도태될까 봐 참 부지런히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언제쯤 이 열차를 타보게 될까 하며 대단히 막연했는데, 지금 내가 그 길에 올라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새로우면서도 왜 조금 일찍이 시작하지 못했을까 아쉬움도 남는다.

    게다가 대학 시절 동경하던 연극들의 본 고장인 러시아에 와있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감격스럽다. 대본에서 봤던 지명들이 열차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모스크바로 가자고 외쳐대던 안톤 체호프 <세 자매> 속의 마샤는 이 열차를 타고 싶었던 걸까. <갈매기>의 니나는 뜨리고린과 함께 이 열차를 타고 대도시로 나갔을까. 니콜라이 고골의 <검찰관> 속 마을 배경은 저기 보이는 저 마을은 아니었을까. 괜한 인연을 만들어보니, 괜스레 운명적인 느낌이 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 군인들의 귀향 열차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친해져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러시아 친구들에게 내가 아는 러시아 극작가들 이름을 댈 때마다 깜짝 놀라는 그들의 반응이 재밌다. 마치 한국을 여행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가 나 현진건이라는 작가도 알아!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이' 하는 대사를 날리고 있는 꼴이랄까.


룸메이트 아줌마 (죄송스럽게도 이름도 못 여쭤봤네)


    이 순간들이 곧 끝난다니,

    아쉽지만 열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그리고는 멈춰 설 테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웃기다 아직도 30시간 넘게 남았는데) 남은 시간을 마저 잘 향유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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