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빈곤으로 그들을 내모는가.
교보문고에서 이북으로 샀는데, 잘 한 것 같다. 이 책은 두고두고 옆에 놓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왜 세계의 반은 굶주리는가”가 입문이라면 “빈곤의 연대기”는 빈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굉장히 방대한 책이다. 근대 세계사 교과서로 쓰면 좋겠다.
스페인,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들이 근대화시기에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나라들을 상대로 어떤 짓을 했는지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DR콩고, 르완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멕시코, 아이티 같은 세계 극빈국들의 경제 사정이 파탄이 나게 된 데에는 이른바 유럽 선진국과 미국, 글로벌 기업 등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내용이 너무 방대한지라,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을 정리해본다.
1. 민영화의 문제점
2016년 세계 제1 부호가 멕시코의 슬림인 것을 몰랐다. 그저 빌게이츠 정도가 최고 갑부가 아닐까 했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수입대체산업 정책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민영화 정책이 적극 실시되면서 대거 매각된 탄탄한 공기업들이 슬림의 기업들에 흡수된다. 슬림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고, 멕시코의 많은 이들이 순식간에 빈민이 된다. 영국에서도 대처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민영화 덕분에 영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탄광의 광부들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무섭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2. 제조업과 생산업, 그 사이
대부분의 극빈국들은 원자재를 수출했다. 이를테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산업화되는 과정에 절대적으로 부족하면서도 꼭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들을 팔았던 것이다. 물론 너무 헐값이어서 그 과정에서 줄도산한 이들이 수도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원의 착취가 끝이 난 다음 그 자리를 다시 선진국들의 제조업 공장들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노동의 착취가 이어지는 셈이다. 너무 너무 헐값으로 하루 종일 일해도 최저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 하는 방글라데시 여성, 아이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죽어도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파업하거나 시위를 하면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를 상대로 딜을 하는 것이다. 파업하면 우리 공장 뺄 거야, ... 그러면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을 보낸다. ...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꼼짝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처음엔 자원, 그 다음엔 노동력, 그 다음은 자국 경제의 파멸...
3. 한 가지 생산에만 몰두하면.
초콜릿의 유명한 생산지인 가나, 코트디부아르가 그랬고, 면화의 생산지였던 인도가 그랬고, 콜탄의 주요 생산지인 DR콩고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원이 부유해서 선진국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매장된 자원을 빼앗기듯이 내어주고, 그 다음은 농장에서 선진국들의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자원만을 생산할 것을 강요당한다. 이를테면 사탕수수, 카카오, 바나나... 덕분에 복잡하게 변동하는 생산재의 국제가격이 떨어지면 이들은 금방 타격을 입게 된다. 여러 가지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딱 한 가지만을 생산하기를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들에게 강요당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읽은 다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입고 먹고 걸친 모든 것이 제3세계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음식이든 물건이든 쉽게 사지 못 하겠다. 우리는 이미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도, 아이들이 차고 노는 축구공 하나도, 리바이스 딱지를 달고 있는 청바지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의 노동력과 우리가 잘 알지 못 하는 다른 어느 나라의 자원이 글로벌 기업과 선진국들에게 강제로 착취당해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 하나는 대한민국일 수도 있다. 우리도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인종차별과 인권침해로 크게 해를 끼치고 있는 중이지 않는가. 이는 곧 소비자들이 영리해지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똑똑해지지 않으면 우리가 바로 이런 일을 부추기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