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효샘 Oct 29. 2017

국화꽃 향기

대지가 키우는 것은 제 때를 안다.

생일이 10월 초다. 그 시절엔 누구나 생일에 꽃을 선물했기에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이 국화꽃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가슴 한가득 국화꽃을 안고 집에 돌아와도 향이 잘 나질 않아서 왜 꽃집에서 파는 국화에선 향이 잘 나지 않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대지가 키우는 모든 것은 각자의 때를 안다. 잔디도 때가 되어야 파래지고, 손톱만 한 채송화도 피는 때가 따로 있다. 백합도 그렇고, 대추도 그렇고 사과도 그렇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제 시기에 맞춰서 피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마당의 국화는 서늘한 바람이 불자 피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정말로 정확하게 제 때에 맞추어서 피어났고, 그 꽃봉오리에선 진한 향이 난다. 이른바 가을향이다.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매일 감탄한다.


이 작은 마당에 사는 풀 한 포기조차 자신의 때를 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서둘러 피어나거나 앞서서 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땅 속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꽃으로 피고 때가 되면 풀씨로 날아오른다. 어쩌면 그리도 잘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잠든 밤마다 속살댈지 모르겠다. 빨리 피고 싶다고 그만 지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풀이나 나무가 투덜대는 걸 들어본 적 없으니 인간은 기다림에 있어 이름 없는 풀꽃보다 못 하고 제때를 모름에 있어 마당 한 켠의 민들레보다 못 하다.


햇볕을 충분히 받지 않은 사과에서는 풋내가 나지만 가을 뜨거운 햇볕을 잘 견뎌낸 사과는 달고 싱그럽다. 그저 자신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한다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인생에도 분명 그러한 때가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나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다보면 정말로 자신의 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향이 진하게 주변을 물들이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더 깊어지고 그윽해지다가 언젠가 찾아올 나의 때에 가장 멋지고 깊은 향기로 세상에 보란 듯이 피어나면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한 영향력, 실천교사교육모임에서 강의하고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