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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효샘 Nov 10. 2017

스무 살의 방

그 방은 작고 노랗고 볕이 들면 환해졌다. 스무 살의 나처럼. 

스무 살의 방

교대 앞에 살았다. 방세는 매달 20일이면 내야 했는데, 직접 현금으로 8만원을 찾아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었다. 문을 열면 창호지를 발라놓은 큰 창문을 가린 노란 체크무늬 커튼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직접 떠다가 압정을 꾹꾹 눌러 박아 만든 커튼이었다. 노란 체크무늬 커튼 아래로는 4단짜리 작은 책꽂이가 가로로 길게 뉘여 있었다. 


책꽂이에는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 박완서, 최인호, 이문열, 신경숙, 은희경, 이외수 같은 작가들의 소설들이 꽂혀 있었고 지도교수님의 득달에 못 이겨 읽던 한국문학통사 같은 책도 있었다. 그 시절 그 작가들의 소설은 내게 노래 같았다. 밤새 책을 읽으면 가슴 속에 마치 그 문장들이 꿈처럼 남아서 곱씹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곤 했다.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소설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때면 책꽂이 위에 놓여 있던 카셋트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카셋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의 첫 구절은 언제나 조동진의 제비꽃,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아주 작은 소녀였고...” 였다. 


스무 살의 방을 떠올리면 그 노래와 그 소설들과 그 많은 문장들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이제는 테이프를 듣는 사람도 테이프를 파는 사람도 없어졌다. 나중에 조동진을 시디에서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아련하고 슬픈 느낌이 사라지고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오는 게 낯설었다. ... 그렇게나 많이 들은 목소리인데도 그랬다. 


 ‘조동진이 세상을 떠났다’ 라는 한 문장에서 문득 그 시절의 노란 커튼이 쳐져 있던 방의 문이 스르르 닫히는 걸 본다. 더는 그 시절을 그리워 할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박완서도 최인호도 세상을 떴다. 내가 알고 좋아한 위대했던 이들이 이제 하나 둘 하늘의 별이 되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먼 훗날 별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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