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적 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취업 준비나 경력 전환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예상치 못한 ‘내적 변화’를 체험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라는 부담감으로 시작했다가, 막상 한 줄씩 써 내려가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감정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혹은 쓰면서 울컥 눈물이 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죠. 의도하지 않았는데, 글쓰기가 마음을 환기하고 숨겨진 감정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문장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글을 쓰는 과정이 심리적 치유나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는 거죠. 이전 글에서 “자소서 작성이 어려운 근본 이유는 글쓰기 실력 부족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정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언급했는데, 사실 한 번 글쓰기의 문을 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나 자신을 정리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글쓰기가 우리 마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 쌓여 있지만, 일상에 쫓기다 보면 그것들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일을 시작하고, 퇴근 후엔 지쳐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내 안에 쌓인 생각들은 별다른 통로 없이 흩어져 버리기 일쑤죠. 그런데 글쓰기를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감정과 기억들이 문장으로 연결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더라?”
“이 직장에 들어가고자 했던 동기 중 가장 큰 게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에 답을 달아가는 과정은 곧,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됩니다. 여러 복잡한 마음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붙잡아두고, 그 안에서 ‘아, 이게 내 진짜 생각이었구나’ 하고 재발견하는 순간을 맞이하죠. 때로는 잊고 지냈던 상처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행위가 스스로를 달래고 안아주는 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과 감정은, 막상 글로 표현하면 ‘내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외부화(Externalization) 효과입니다. 내가 가진 문제나 감정을 문장으로 써 내려가면, 더 이상 내 안에서 뒤엉켜 있는 모호한 덩어리가 아니라 ‘바깥에 놓인 대상’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나는 군복무만 오래 해서 다른 경력이 없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다”
는 마음을 그냥 막연히 품고 있다가, 글로 구체화해 보면 생각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적게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군 복무 중 얼마나 많은 리더십 상황을 겪었는지, 위급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대인관계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등. 이 과정을 통해 ‘아, 내가 무의식적으로 왜 스스로를 축소해봤던 거지?’ 하며 한 걸음 떨어져 내 삶을 관찰하게 됩니다.
마치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어주듯, ‘나’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객관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거예요. 이 관점의 전환은 자존감 회복과 새로운 자기 이해를 불러옵니다.
학문적으로는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민이나 트라우마, 일상의 감정을 솔직히 적어내면, 심리적 스트레스가 줄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물론, 자기소개서는 표현적 글쓰기와는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자기 안의 이야기를 솔직히 풀어놓는 힘’만큼은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예컨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글로 정리해 보면, 막연히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해야 해…'라고 끌려 다니던 마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업보다는 상담 쪽에 더 마음이 가는구나’와 같이 구체화됩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안정된 직장을 너무 원하고 있었구나, 불안정한 상황을 두려워했구나' 같은 감정적 동인도 발견하게 되죠. 그동안 무의식 수준에서만 자리 잡고 있던 욕구나 공포가 글로 가시화되는 순간, '이제야 나 자신을 좀 더 알겠다'는 안도감을 얻게 됩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현재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넘어, ‘과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태도도 바꿔 줍니다. 과거의 실수나 실패가 지금껏 짐처럼 느껴졌다면, 글로 작성하며 그것에 붙인 ‘의미’를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때 너무나 큰 실패를 겪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고만 여겼다면,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이런 부분에서는 성장했고, 이 교훈 덕에 오늘의 내가 됐다”
같은 새로운 시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예전 이야기를 다시 곱씹을 때, 실은 그때의 실패가 지금의 강점이나 경력 전환의 동기가 되었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순간들을 재해석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놓는 행위가 글쓰기에서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심리적 효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정감과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외일 수 있지만, 막상 써보면 '나도 잘할 수 있네!'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글을 잘 쓴다’는 건 수상 경력이 될 정도의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내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한 문장씩 써 내려가며 ‘아, 이건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구나’ ‘의외로 나는 이런 면이 강하구나’ 하고 발견하게 되면, 그동안 막연히 감정에 휩쓸리고 자책했던 부분이 줄어듭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이 자신감은 곧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나 면접 자리에서도 '그래, 난 이런 강점이 있지'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고, 그 에너지가 타인에게도 전해집니다.
자기소개서 테라피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그때 내 얘기 들어줘서 참 고마웠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상담자가 아니고 자신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니까요.
상담실에서 심리 전문가와 대화하면 내면의 생각을 꺼내놓게 되듯이,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변을 적어내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속도나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번 이 글쓰기 대화를 시작하면 점점 더 깊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기쁨이나 슬픔, 성공이나 실패의 기억이 ‘나만의 언어’로 기록되는 순간, 마음 한편이 정리되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죠. '이제 이 감정을 어딘가에 내려놓고 새롭게 출발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들기도 합니다.
글쓰기가 주는 심리적 효과는 단지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 테라피 과정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이룬 것들을 글로 정리해보니,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다!”
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 기세로 자격증 공부나 새로운 직무 도전을 시작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우리가 의외로 ‘나는 이 정도밖에 못 해’라고 스스로를 제한해놓고 살 때가 많아요. 그런데 글쓰기 과정을 통해 '아니, 이 정도가 아니라 꽤 다양하고 훌륭한 일들을 해왔는데?'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데 자신감이 붙는 거죠. 이처럼 심리적 안정 + 성장 동기라는 이중 효과가 나타나는 건, 글쓰기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자기 객관화’를 가능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글쓰기가 주는 심리적 효과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돈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스쳐지나갔던 경험을 문장으로 묶고, 그 안에 묻힌 감정과 욕구를 정리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죠. 때론 “나는 진짜 뭘 원하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며, 전환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가 단순히 취업을 위한 형식적 문서가 아니라, '내 인생을 다시 쓰는 기회'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점점 맑아지고,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내가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그 서사의 내일(미래)은 지금부터 내가 새롭게 계획하고 가꿔나갈 몫입니다.
글쓰기는 심리적으로 다양한 선물을 줍니다.
“나는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나 독특한 경험을 해왔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기연민이 아닌 자기수용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나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는 원동력이 되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손을 움직여 한두 문장을 쓰는 게 전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 글들이 쌓여가며, 무심코 지나쳤던 내 과거가 새롭게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쌓아온 하루하루’가 이어진 문장이 이제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자기소개서 테라피에서 이러한 글쓰기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겁니다. 아직 글쓰기가 어색하더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나의 마음을 조금씩 풀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임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유와 성장의 씨앗은 뿌려진 셈입니다. 그 씨앗이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활짝 꽃피우도록, 함께 걸어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