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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Mar 17. 2024

애지중지 금쪽 같은 내 새끼

할머니 이야기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맛있게 드셨고, 소고기가 들어간 국을 특히 좋아하셨다. 체질상 돼지고기를 못 드신다고 했고, 닭고기는 목을 비틀어 잡아 죽였기 때문에 그 모습이 떠올라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항상 나와 동생만 먹었다. 그러라고 일부러 싫다고, 못 먹는다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소고기는 어려서부터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집에서 키우는 소가 있었고, 동네에서 가끔 소를 잡는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다. 그게 비싼지 맛있는 지도 몰랐다. 그저 소는 농사를 짓는데 필요하니 잡을 수가 없어서 고기로 먹지 못하는 동물인가 했다. 그런 소고기를 좋아하신다는 말에 언젠가 농사짓는 소 말고 잡아먹을 수 있는 소를 마련하고 그 고기를 할머니에게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살 생각은 없었다.  지금 키우는 소가 새끼를 낳으면 잘 키워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돈과 소를 연결시킬 머리까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커서 어른 되면 할머니 좋아하는 미역국에 소고기 많이 넣어서 끓여 줄게."

"그래 성민아, 말이라도 고맙다."





"우리 성민이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여! 성민아! 너 얼른 일로와~ 집에 가자. 설령 우리 성민이가 그런 짓을 했다면 저 놈이 꼬드겨서 했을것인께. 울 애기는 나가 델꼬 갈라요."

할머니에게 나는 절대적으로 지켜줘야 하는 귀한 손주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자그마한 시골 동네에 난리가 난 사건이 있었다.

딸기밭주인아저씨가 화가 나서 동네 아이들을 전부 모아서 혼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리를 하다가 비닐하우스를 다 찢어버려서 농작물이 다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딸기 서리를 했던 주인공들은 나를 포함한 동년배 친구들이었다. 항상 모여 다니던 나와 친구들 5명이 있었고, 동생들까지 9명이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도 버스표값으로 군것질을 하고 돈이 없어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 걸어 다니곤 했다. 그때 산에서는 산딸기며 앵두 같은 것들을 따먹고 다녔고, 냇가에서는 발가벗고 수영도 했다. 뱀을 잡아다가 이웃 마을 뱀장수한테 오백 원, 천 원 받고 팔기도 했고, 길거리의 음료수병, 맥주병, 소주병 같은 것들을 모아다가 오십 원, 백 원에 팔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다 놀이터였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게 과일 서리다. 딸기 서리, 복숭아 서리, 단감 서리, 살구 서리, 수박 서리 등 다양했다. 그때도 평소럼 딸기 서리를 했었다. 꼭대기 집에 살던 남철이라는 친구는 항상 새로운 생각을 많이 했다. 남철이는 비닐하우스 입구로 왔다 갔다 하면 잡힐 수 있으니까 옆에다가 출입구를 하나 만들자고 했고 비닐을 정교하게 자를 수 있는 칼도 가져왔다고 했다. 근처에서 대나무를 몇 개 가져다가 하우스 아래쪽에 원래 있던 것처럼 출입구를 만들어놓으면 어른들이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하면 걸릴 게 뻔한 일인데, 왜 그랬는지 우리는 남철이가 말한 그대로 출입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우스 동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중간에 연결통로를 두 개, 가장 바깥쪽에 주 출입구 하나, 이렇게 총 세 군데 만들어 놓고 뿌듯해하면서 며칠간 그 출입구를 통해 딸기서리를 했다.


근데 누군가 제일 바깥쪽 출입구를 안 닫고 열어두고 와버렸던 것이다. 설사 닫았다고 한들 튼튼하게 했겠나. 그 덕에 찬 바람이 들어가서 하우스 세 동 안에 있던 딸기가 다 죽어버렸다. 우리가 그렇게 정교하게 자르고 대나무를 대서 만들어놓은 출입구는 주인아저씨 입장에서 찢어발겨놓은 모양새일 뿐이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과일 서리 조금씩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묵인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건이 생기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친구와 동생 9명 중에 한 명이 딸기밭 주인집 딸을 좋아했는데, 우리가 하우스에 구멍을 내놨다고 우리만 아는 비밀이라며 알려줬다. 주인아저씨네 저녁식사 자리에서 비밀이 폭로되면서 아저씨는 폭발했고, 당산나무 밑에 모닥불까지 피워두고 아이들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인집 딸내미 남자친구부터 잡혀와서 아저씨의 심문에 하나씩 불었다. 불 때마다 한 명씩 두 명씩 끌려왔고, 무슨 일이냐며 동네 어른들도 다 나와서 구경하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불려 나갔다.


"이 놈이 얌전하게 공부만 하는 놈인 줄 알았드만, 도 한패였어?"

아저씨가 매섭게 쏘아붙였고, 난 모닥불 바로 옆에 꿇어 앉혀있었는데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옆 동네 일당벌이 일하러 갔다가 돌아온 할머니는 손주가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씩씩거리면서 쫓아왔다.


"성민아, 는 이리 와. 누가 의 집 귀한 자슥 끌어다 머라 해!"

할머니가 씩씩거리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짐, 야랑 친구들이 우리 하우스를 다 찢어 발겨놨당께요."

딸기밭집 아저씨가 할머니의 앞 길을 막았다.


"딴 아들은 몰라도, 우리 성민이는 그럴 아가 아니여. 어서 비켜."

할머니가 정색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동네 어른들도 나는 보내줘도 된다고 동의하는 듯했다. 친구들은 당산나무 밑에서 밤 새 혼이 났다고 한다. 나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있었지만 한숨도 못 잤다.


딸기밭집주인아저씨와 동네 사람들의 동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손주를 얼마나 귀하게 키우고 있는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성민이라는 한 아이가 아니라, 자신보다 귀한 금쪽 같은 새끼라는 그녀의 한 부분을 보내주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배우고 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 일제강점기 때 진짜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못살게 굴었어?"


"그랬제."라고 하면서 웃기만 하셨다.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말도 못쓰게 했다고 하던데, 그러면 할머니도 일본말할 줄 알아?"


"다 이자뿌렇제, 곰방와, 하면 밥 묵었냐는 말이여."

이렇게 말하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하셨다.  


이후에도 학교에서 배운 한국전쟁이나 파독광부나 간호사 이야기, 베트남전쟁에 파견 간 용감한 군인들 이야기, 국내에서 일어난 북한 간첩들의 반란사건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이야기 등을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학교에서는 각각이 모두 엄청난 사건들이고 그때 희생된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런 일들을 하나도 모르고 계셨다. 이런 이야기를 물으면 그때마다 그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하셨다.


역사 속에서는 매섭고 강하고 억울해야 하는, 그래서 인생을 걸고 용기 내서 저항해야 했던 영웅적 인물들 이야기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할머니 같은 분들에겐 그저 살아내야만 했던 하나의 기억일 뿐이었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며칠씩 앓아누우셨다. 열이 펄펄 나서 물수건을 밤새 바꿔줘야 했고, 깡마르고 자그만 몸은 더욱더 말라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물만 먹어도 세숫대야가 가득 찰 정도로 구토를 했다.


벌교에 있는 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면 '화병'이라고 했다. 약을 봉지로 받아와서, 약으로  버티다 보면 괜찮아지곤 했다.  


자식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남편이 답답해서인지, 철 모르고 지내는 손주들을 보자면 안타까워서인지......

한 여자이고 싶은 데 이렇게만 사는 게 한스러워서인지.


그럴 때마다 머리에 물수건 올리는 것도 스스로 하셨다. 자식들은 다 외지에 있었고, 어린 손주들도, 남편도 그런 건 할 줄 몰랐다.






엄마가 돌아오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 집을 떠나 도시로 갔다. 할머니는 70세가 넘어서야 일이 다 끝났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온전히 부부 둘만 남았다.


몇 년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바로 다음 해 따라 돌아가셨다. 하늘로 떠나가는 날에 그렇게 귀하게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과 손주는 각자 먹고 사느라 바빠서 오지도 않았다. 막내아들 내외만 와서 소박하게 장례를 치렀다. 남편이 하늘로 가는 것까지 옆을 지켜주고 마지막에 가는데, 그 길에 제일 애지중지했던 큰 손주는 배웅하지도 않고 배신했다. 그렇게 귀여운 표정으로 약속했던 소고기 미역국은 끝내 얻어먹지 못했다. 애지중지 금쪽 같은 내 새끼도 그녀가 작별하는 날 같이 떠나버렸다.


지금 배신자의 눈은 촉촉한데, 시선이 닿는 그녀의 누운 자리는 어둡고 메말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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